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술로, 수다로, 운동으로, 노래로, 아무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있다.
여행은 가성비가 좋은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편히 쉬면서 갈 수 있고, 교통체증으로 인한 피로도 줄일 수 있어 선호한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동안 인천, 수원, 문산, 철원, 그리고 춘천 등을 수 차례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가장 분위기가 있고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유유자적하면 세상 더 바랄 나위가 없고, 쳇바퀴 도는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잔잔한 느낌은 한동안 지워지지 않아서 좋다.
그렇지만 이곳저곳을 두루 찾아다닐 수 없을 때는 차를 몰며 드라이브를 한다.
그러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TV 선전문구를 생각하며, 커피와 간식을 준비하고, 트렁크 안에 파라솔과 간이의자까지 챙겨서, 아무 곳이나 차를 세워놓고 쉬면 그때부터 스트레스 끝, 소소한 행복이 시작된다.
날씨가 제법 따스했던 지난 주말, 나는 아침 10시에 집을 나와서 차를 몰고 포천, 동두천, 법원리, 문산을 거쳐 오후 늦게 귀가했다.
말하자면, 옛날 군생활의 추억을 생각하며 군인들이 많은 경기도의 서북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쭉 드라이브하였다.
포천 가는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집에서 40분이면 가는데, 아침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겨우내 잠들었던 산과 들의 봄기운을 드라이브하며 보는 느낌은 최고였다.
포천은 작년 여름에 허브아일랜드와 비둘기낭 폭포 등을 다녀왔는데, 그곳은 광릉수목원 등이 있어 운치가 있어 좋고, 소문난 맛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가 많아 종종 간다.
미군부대가 많은 동두천은 예전의 화려함은 거의 사라졌지만, 곳곳에 과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도깨비시장 등이 있어 가끔 간다.
더구나 내가 직장생활 초창기 시절, 현역으로 복무 중인 김호석 동기 (ROTC19기, 중령 예편, 현재 경기대 한류문화대학원장)를 만나러 갔던 곳이 동두천 아닌가!
그때 그는 작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다방에서 비싼 헬멧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커피를 마시며 군대 얘기, 직장 얘기를 번갈아 주고받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법원리는 내가 2년간 몸담았던 1사단 17 포병대대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외출 시 자주 나왔던 곳인데,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문 닫은 점포가 많아 예전의 활기찬 기운이 없어 안타까웠다.
더욱 가슴이 뭉클했던 곳은 내가 근무했던, 브라보 포대가 있던 밤고지와 용산골이었다.
밤고지는 대대에서 포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데, 그 당시 629와 868 등 군단 지원부대가 가까이 있어 군인들로 들썩여 다방과 술집이 대 여섯 곳이나 있던 유흥지였다.
지금 그런 집은 하나도 없고, 더구나 일용잡화물을 팔던 마산 상회도, 사병들이 적지 않은 외상을 달아놓고 제대해 하소연하던 구멍가게 할머니 집도 없어지고 모두 가정집으로 변했다.
잠시 차에서 내려 밤고지를 둘러보니 그 당시 우리 부하 사병들이 목소리 높여 군가를 부르며 행군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군대 동기들과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회식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어디선가 '이중위!' 하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브라보 포대 뒷동네인 용산골은 현역 시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 당시 그곳에는 우리 포대 선임 하사들이 많이 살았다.
어느 날 밤에 충청도가 고향인 선임하사가 일직사관인 나에게 아내가 산통이 시작되어 문산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겠다며 급히 지프차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이미 아이 둘을 두었던 그 선임하사는 30세도 안된 나이에 결국 셋을 가졌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잘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내 푸른 청춘을 바쳤던 이곳 포병부대를 제대 후 20여 년 만에 가족과 처음 방문했는데, 이번에 두 번째 왔으니 언제 또 오겠는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노래를 들으며, 부하 장병들이 만들어준 가마에 올라타고 정들었던 브라보 포대를 떠났을 때, 후배 장교가 나에게 '이중위 님! 이곳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지요? '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무려 36년 전의 일이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