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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여름휴가


아주 좋아!  최고야!


넓은 개울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입만 열면 내는 소리다.


여기는 가평 명지산 계곡 인근 개울가이고, 모처럼 온 가족이 다 함께 휴가를 내어 막바지 여름을 즐기고 있다.


~~~~


여름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그냥 지나갈 뻔했다는 큰애의 얘기에 멀리 시원한 계곡을 찾아 경기도와 강원도를 넘나들며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려는 내 마음은 밀린 숙제를 다한 느낌이었다.


주 전부터 가족들과 주말을 피해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는데, 잠시라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쉬고, 이참에 아이들에게 포천 허브아일랜드와 아트밸리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매년 갔던, 한 달 전에 계곡에 물이 없다던 축령산 휴양림은 일찌감치 제외하고, 사전에 도상연습을 하며 선택한 곳은 경기도 포천 백운계곡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쭉쭉 뻗은 포천 고속도로를 타고 도착한 백운계곡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물 좋은 자리마다 모두 식당에서 점거하여 우리 같은 나그네가 자리를 깔고 편히 쉴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서울 근교 수락산 등 계곡 유원지에는 그런 불법시설물을 모두 철거했다기에 차를 돌려 그곳으로 갈까 하다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가 보았다.


경사진 산길을 구비구비 20여분 돌아가니 광덕계곡이 있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흥얼거렸던 큰애가 차창밖에 얼굴을 내밀고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가족과 함께 여행하니 기분이 좋다고 하였다.


'' 아빠!  시골 풍경을 보며 천천히 드라이브한 후에 어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쉬다가 가지요?''


ROTC 장교 출신으로 남달리 추진력이 뛰어난(?) 나는 빙그레 웃으며 물가를 계속 찾았고, 물 맑고 수심 깊은 도마치 계곡까지 내려갔지만 출입금지구역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몇 분 지났을까, 다행히 우리는 한적한 명지산 계곡 넓은 개울가를 찾아 차를 세워놓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아 의자와 식탁까지 나란히 놓으며 이동식 별장을 꾸몄다.


나는 편히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멀리 아내와 아이들이 개울에서 놀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왔고, 나에게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 노래를 합창하는 것 같았다.


그래! 멀리 갈 것도 없다!


그냥 차에 먹을 것 싣고 떠나면 되고, 머물면 우리 집이 아닌가!


우리는 오후 2시가 다되어 늦은 점심을 하러 자리를 떴고, 아쉬움을 남긴 채 내년에 또다시 올 것을 기약하였다.


시원한 막국수를 먹으러 식당을 찾다 보니 가평까지 왔고, 내가 애초에 계획한 포천 내 2곳 명소는 차로 무려 1시간 20분 거리로 멀어졌다.


여기까지 왔으니, 가까이 있는 춘천에 가자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다시 포천으로 달렸다.


먼저 과거 화강암 폐채석장을 15년 전에 관광명소로 아름답게 꾸민 포천 아트밸리로 갔다.


작년에 포천 일대를 여행하면서 시간이 부족해 못가 섭섭했는데, 그곳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아트밸리는 모노레일을 이용해 주변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고, 특히 암반수가 터져서 20미터 깊이의 에머럴드빛 인공호수가 화강암 수직 절벽과 조화를 이뤄 환상적이었다.


정말 아이들이 좋아한 곳은 포천 허브아일랜드였다.


그곳은 작년에 우리 부부가 가서 멋진 추억을 남겼는데, 가족과 함께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명소였다.


우리는 먼저 큰애의 취향에 맞는 예쁜 카페에서 다과를 하며 어둑어둑할 때까지 담소를 나눴다.


수십 종의 다양한 허브향을 느끼는 것도 좋았지만, 3천 평 넓은 라벤더 밭에 오색찬란한 라이팅쇼를 펼친 산타마을은 압권이었고, 곳곳에 우리들을 마치 동화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포토존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델인양 온갖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인생 샷을 찍었고, 뭔가 아쉬웠는지 몇 발자국 가다가 다시 돌아가서 서로 히죽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 여행은 평일이라 전혀 붐비지 않았고, 가을 분위기를 느낄 만큼 제법 선선했으며, 내가 계획한 모든 일정을 잘 마무리하여 더욱 좋았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마치 하늘에서 보는 공항 활주로 같았고, 찍은 사진을 보며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비행기 조종사였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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