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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혼인 미사


''결혼하신 분 중에 아직도 아내(남편)를 사랑하는 분이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세요!''


결혼도 안 한 신부님이 혼인 미사를 주례하면서 던진 짓궂은 질문에 참석한 200여 명 하객 중에 손을 든 사람은 사촌동생을 포함해서 10명도 채 안되었다.


피로연장에서 만난 사촌동생은 멋쩍은 듯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것 같아, 엄숙한 분위기를 깨려 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청춘남녀가 만나 데이트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어느 정도 연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상대방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난 후에 결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결혼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뜨거운 감정도 평균 3년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이것은 운명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함께 살 것처럼 생각하였으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 이혼도장을 찍는 경우도 있어, 결혼 후 3년이 고비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통상 밀월은 3개월이고, 아기라도 낳게 되면 그것이 책임과 의무가 되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지 않은가!


따라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라!''는 주례 신부님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어제 강력한 태풍 '링링'이 전국을 휩쓸던 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오래전에 어느 성당 혼인 미사에 참석했을 때 무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예식을 기억하고 지레 겁을 먹었는데, 어제는 50분 정도로 짧게(?) 끝나 다행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름모형 예식장에서, 화강암으로  고풍스럽게 장식한 벽면 위에 걸린 예수 십자가상은 우리에게 엄숙함을 요구하였다.


10번 정도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혼인 미사는 경건함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사회자를 따라 하는 염경 기도는 분위기를 더욱 성스럽게 만들어 속삭이는 하객들도 볼 수 없었다.


주례 신부는 이 혼인이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인지, 이 혼인에 이의(?)가 없는지 신랑, 신부에게 물은 후에, 반지를 교환하며 정식으로 부부가 됨을 선언하였다.


이윽고 젊은 사제가 기타를 치며 조용히 축가를 불렀고, 곧바로 신랑과 성악을 전공한 그의 여동생이 듀엣으로 신부를 바라보며 사랑의 노래를 선사하며 뭇시선을 집중시켰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이 지난하여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맞벌이를 하며 생활하기도 어려워 우리나라 신생아 출생률이 세계 최저라고 한다.


이번 혼인 미사는 듬직하고, 잘 생긴 33세 신랑과 착하고 예쁜 27세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는 우리 집안의 큰 행사였고, 장차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애국하려는 시발점이었으며, 나에게는 오랜만에 반가운 친척들을 만나 정을 나누는 즐거운 하루였다.


폭죽을 터트리고, 스프레이를 뿌리며 재미를 더하는 이벤트성 일반 결혼식과는 달리, 이번 혼인 미사는 분위기가 차분하고 특이해서 참석한 모두에게 뜻깊은 행사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눈도장을 찍은 후, 무슨 주례를 했는지 관심도 없고,  손뼉 치며 웃다가 끝나버리는 것과는 달리, ''결혼은 사랑하기 위함이고, 또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의지' 라며 새로운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소리 좋은 신부님의 주례사는 당분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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