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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나의 최초 외국인 영어선생님

요즈음처럼 추운 겨울이면 과거 내가 1사단 포병대대 관측장교로서 OP(관측소)에서 근무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경기도 문산 인근에 있는 208mr의 나지막한 산꼭대기에서 3개월 동안 GOP전선의 동태를 파악하는 임무를 맡아 부하사병 4명과 함께 마치 산적같이 생활한 적이 있다.


그 당시 OP에서는 밥을 해먹지 못해 고지 아래에 있는 보병대대에서 급식을 받아 오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 끼니를 해결하느라 부하사병들이 큰 밥통을 들고 왕복 30여분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하루 중 큰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급식을 받아오던 사병이 우리 고지 100mr 후방 대대지휘 벙커에 미군부대가 들어왔다고 하여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자 복장을 갖추고 그들을 만나러 갔다.


그들은 벙커 인근에 여섯 개의 대형텐트를 쳤고, 트럭 및 지프가 있어 멀리서 보기에도 제법 규모가 컸으며, 벙커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어 우리 포병 OP와는 확실히 비교되었다.


잔뜩 긴장을 하고 커다란 벙커 안에 들어서니 100kg쯤은 족히 되어 보이는, 흑인상사가 나를 보더니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였고, 빨갛게 달아오른 벙커C유 난로 주위에는 5~6명의 여군들이 반소매차림으로 타이핑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용기를 내어 짧은 영어로 상사에게 여기에 왜 왔고, 얼마 동안 주둔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빠르게 얘기하는 내용을 대충 알아듣고는 그냥 나오기도 뭣해서 두리 번 거리니 옆에 있던 20대 초반의 예쁜 여군이 커피를 타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그 동안 배운 민병철 생활영어를 써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만만한(?) 그녀를 상대로 구체적으로 여기에 왜 왔는지, 여군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나는 온통 영어로 범벅된 몇 권의 잡지책을 뒤적였고, 또 그녀가 준 고소한 비스킷을 나눠먹으니 마치 미국에 온 것 같았다.


난생 처음으로 미모의 여군과 나란히 앉아 더듬거리는 영어였지만 서로 대화가 통하니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 후 나는 그들의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시간에 맞춰 2~3일에 한 번씩 그곳을 찾았고, 그때마다 나의 어설픈 콩글리쉬가 조금씩 세련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저녁 급식을 타러 보병대대를 다녀 온 사병이 헐레벌떡거리며 C-레이션 한 박스를 가져 왔다.


녀석은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나에게 그 미군 대형 텐트 속에서 훔쳐왔다고 하면서 마치 첩보대원이 특수임무를 성공리에 마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얘기하였다.


아~~!


내가 공을 들여 힘들게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녀석에게 버럭 화를 내며 야단쳤지만, 그것을 돌려줄 수도 없어 그냥 먹기로 했다.


우리는 들킬까 봐 숨을 죽이며 말로만 듣던 씨-레이션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맛을 본 후 즉시 쓰레기를 완벽하게 폐기 처분하였다.


그 사건 후, 한 동안 나는 나의 미군영어선생을 볼 면목이 없어 그곳에 가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사건이 잊어질 만할 때 그곳을 방문하니 그 여군은 이미 다른 곳으로 배치 받아 없었고, 얼마 후 나도 자대 복귀 명령을 받아 하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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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러운 겨울철,

전방부대에서,

그것도 208고지 정상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영어에 자신감을 안겨준 그 예쁜 여군이

오늘따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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