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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유명산과 세프


어젯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올댓 스케이트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가 멋진 공연을 펼쳤다.


나는 그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기에 감동해 밤잠은 설쳤지만, 상쾌한 마음으로 잠실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가평 유명산으로 향했다.


샌드위치 연휴라 산과 도로는 그다지 붐비지 않았고, 비가 온 후라 날씨가 맑았으며, 심산유곡을 걷는 둘레길이라 콸콸 흐르는 계곡물과 푸른 숲을 보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성질 급한 친구 J는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갔으며, P는 사진작가가 되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제각기 자연을 음미하며 노래하는 시인과 가수가 되었다.


황야의 무법자 7인 대부분은 노다지를 발견한 듯이, 이곳 유명산 둘레길이 마음에 들어 조만간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였고, 점심시간이 다되어 오늘의 주인공인 K를 만나러 가평 설악면으로 향했다.


청평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별장에서 수년간 유유자적하고 있는 K는 양지바른 한쪽 모퉁이에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을 심었고, 최근에는 책장, 침대 등을 손수 제작하는 목공기술까지 습득하며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우리는 커다란 파라솔 밑에 테이블을 세팅하였고, S와 L이 구운 숯불 삼겹살을 주인장 K가 직접 만든 오이소박이와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꿀맛이었다.


손녀 전화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Y는 기분이 업되었는지 소주를 물처럼 마셔댔고, 급기야 흥에 겨워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어제 김연아 공연과 전원주택에 대해 얘기하는 사이에, K는 감자와 호박을 넣은 된장국을 준비했는데, 이는 재작년에 먹었던 그 구수한 맛 그대로였다.


밭에서 직접 따온 신선한 야채에 고기와 술을 먹으니 다들 허리둘레가 1인치씩 불어났고, 우리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실내로 들어왔다.


수십 장의 LP판과 CD로 장식된 거실은 르네상스 음악실이었다가, DJ가 나오는 음악다방이 되었고, 7080 노래와 흘러간 팝송을 따라 부르니 우리 모두 20대 더벅머리의 먹고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들은 다시 잔디밭에 둘러앉아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학창 시절 노래에 얽긴 사연을 얘기하였고, 스피커를 통해 한국가곡 '명태' '사랑' 등을 따라 부르며 추억에 젖었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켰지만, 주인장 K가 직접 춘장을 볶으며 만든 짜장면을 안 먹고 그냥 가면 섭섭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는 터질 듯한 배를 주무르며 조금씩 나눠 먹었다.


그런데 이거 웬만한 중국집 짜장면보다 정말 맛있었다.


대충 자리를 정리한 후에 집을 나서려는데, 세련된 카페가 동네에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피자와 커피를 먹으며 1박 2일 같은 긴 하루를 마무리한 후에 차에 올랐다.


왕 소위 출신 L은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음식을 잘 만드는 주인장 K를  '엄마'라고 부르는 농담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누구나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오고, 특히 음식 솜씨와 더불어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남을 배려하고, 칭찬하며,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엄마 같은 조심스러운 성격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프 K는


지난번에 구수한 된장국을 준비했고, 이번에는 짜장면을 선보여 그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다음에 그를 만나면 어떤 메뉴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그가 나무를 사다가 직접 만든 목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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