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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남해안 여행

여행은 즐기는, 극기훈련이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아내와 1박 2일 남해 독일마을과 다랭이마을 등을 다녀왔다.


주 전부터 여행 계획을 잡았지만, 남해 일대를 제대로 돌아보자는 생각에 하행길에 들리려던 남원과 하동 코스를 며칠 전에 취소하였다.


소풍 가기 전날은 잠이 안 오듯 새벽 5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춘천으로 가는 88도로는 생각보다 붐벼 남해로 가는 경부고속도로는 더 심할 것 같았다.


7시 20분 집을 나와 하남 톨게이트에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비집고 들어왔다.


아뿔싸!  교통전쟁 시작이다!


아이들 어릴 때 어린이날에 도로가 막혀 길에서 헤매다가 12시쯤 에버랜드에 도착한 후에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두 개 놀이기구를 탔는데, 그때 무더운 날씨에 지쳤고, 사람들에게 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까마득하게 잊었던 그 어린이날 연휴를 이용해 우리는 떠났고, 집에서 1시간이면 오는 천안을 4시간 넘게 왔을 때, 숙박비 등 선지불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갈까 망설였다.


평소 같으면 수원, 멀어도 안성이면 교통체증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만, 이곳 천안까지 와서 막상 되돌아가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과감히 포기하자니 특별히 1박 2일을 보낼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아내와 나는 점심때 남원에 도착해서 추어탕을, 저녁에는 하동에서 재첩국 식사 일정을 취소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자위했다.


첫 여행지인 남해 다랭이마을에 애마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그러니까 잠실 집에서 떠난 지 무려 9시간 만이었다.


우리 집에서 본가와 처가가 차로 1시간 이내에 있어, 명절 때마다 길에서 9~10시간 허비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남 얘기로만 알았는데 막상 내가 체험하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좁은 공간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생리문제를 해결하느라 특히 여자들은 화장실 앞에서 긴 줄 서는 것은 고통이었다.


다랭이마을은 특이한 계단식 밭, 암수바위  그리고 바다전망이 좋았지만, 30도 경사를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어 무릎이 좋지 않은 노인에게는 그다지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둑어둑해지면서 바다와 어울려 아늑하고 환상적인 조망을 가진 남해 라운지 32에 들려 잠시 구경한 후, 차창 너머로 미국마을을 대충 본 후에 숙소에 도착했다.


~~~~~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국내 4대 해수관음상인 남해 보리암으로 향했다.


7시 40분 보리암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이미 수십 대의 차들로 복곡저수지 초입부터 길게 정체되어 있었다.


우리는 일찍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몇 시에 일어났나!


다행히 20분도 안되어 우리는 복곡 1 주차장으로 들어왔고, 10분 정도 더 올라가 보리암 턱밑에 있는 복곡 2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역시 보리암은 명성답게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절경과 우뚝 솟은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압권이었다.


더구나 사월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형형색색의  연등으로 수를 놓아 파란 하늘, 푸른 숲과 조화를 이뤄 컬러풀한 풍경이 예뻐서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컵라면을 먹는 포토존으로 유명한 금산산장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좋아했던 금산 정상을 오른 후에, 11시쯤 복곡 2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보리암으로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복곡저수지부터 구비구비 앵강 고개까지 수 km 이어졌는데, 그들이 보리암을 보려면 적어도 오후 1~2시는 되어야 할 것 같아 헛웃음과 한숨이 연이어 나왔다.


우리는 남해편백나무 휴양림을 들려 잠시 몸과 마음을 힐링한 후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원예예술촌과 독일마을로 향했다.


음악을 들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며 내비를 보니 원예예술촌까지 800미터라고 하였고, 전방에 보이는 경사진 좁은 언덕은 이미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길가에 주차한 수 백명의 여행자들은  때 이른 더운 날씨를 원망하며 적어도 200~300 미터 언덕길을 걸었고, 우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 끝에 30분 만에 예술촌에 도착했는데 운 좋게도 차 한 대가 들어갈 공간을 찾았다.


원예예술촌은 그다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집과 카페 그리고 예쁜 꽃과 나무로 꾸며져 감성적인 젊은이들이 좋아할 명소였다.


또한 건너편 독일마을 기념관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슬픈 사연이 서려있었고,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한 그들 삶의 현장이어서 더욱 감동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 나란히 앉아 시원한 독일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어제 아침 하행길에 경험했기에 심각한 교통체증을 피해 아예 늦게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6시 30분 남해에서 사천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몇 분 안되어 외길 차로는 막혔고,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수 km에 걸쳐 있는 정체된 차량행렬을 멀리서 쳐다볼 수 있었다.


분명히 무슨 사고가 났거나, 워낙 차량이 많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해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서 좁은 길로 들어갔다.


다행히 우리는  20여분 달린 끝에 앞줄 행렬에 합류했는데 적어도 1시간은 절약한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어둠 컴컴해졌고, 삼천포대교를 지나 사천 IC까지 40여분을 달려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뻥 뚫려있어 처음에는 100km 속도를 냈지만 충북 청주부터 속도가 줄어 내비를 보니 도착시간이 밤 12시였다.


입장에서 안성까지는 아예 정체구간이어서 30km 이하 거북이걸음으로 갔고, 결국 12시 40분에 집에 도착하였다.


이번 남해여행은 이국적인 명소가 많아 여수, 통영과는 분위기가 달랐고, 기대했던 이상으로 유익했고 재미있었다.


다만 1박 2일 여행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는 첫날 저녁과 둘째 날 점심뿐이었고, 나머지 세끼는 오가면서 시간이 맞지 않아 집에서 싸온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군것질로 대충 때웠다.


이번 남해여행은 하행에 9시간, 상행에 6시간을 그리고 중간 이동시간 등을 모두 더하면 20시간에 걸친 자동차 여행이었고, 더운 날씨에 경사지 30도를 오르내리며 하루 15000보 이상을 걸은 극기훈련이었다.


그러나 여행 뭐 있는가?


'다리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 떨릴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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