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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연 Mar 29. 2023

누구도 미워하지 말 것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타인을 끝까지 미워해 보았다.

보통은 사랑으로 시작했던 관계가 뒤틀려 그렇게 되었다.

나는 사랑이었는데, 상대는 아니라는 의심이 확신이 될 때

나는 진심이었는데, 상대는 기만이라는 확신이 들 때

그때, 증오는 꽃을 피운다.


나는 미워하는 타인을 마음속에서 수백 번 죽여버리고는 했었다.

최대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살해하는 방법을 공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할 수 없으니, 내 세계에서 죽여버린다.

없는 사람처럼 대하고, 없었던 일처럼 지낸다.

그리고 타인에게 절대 이유를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평생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 또 다른 사람을 잃어버리기를 기도하면서.


자신을 끝까지 미워해 보았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꺾일 때마다 내 목을 뒤틀어 버리고 싶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선택한 적이 없는데, 내 탓이 아닌 것을 이유로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낙화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다음 생을 꿈꾸었다.

다음 생의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길 바랐고, 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며, 더 많은 사람을 돕고,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꿈이 깰 때마다 어두운 내 방은 지옥이었다.

비루한 나의 삶을 되풀이하느니, 또 다른 생을 살기를 기도했었다.


그런데, 내가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게 한 문장이 있다.

'고통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놓아 보내야 했다.

손에 꼭 쥐고 있던 가시 넝쿨을 놓아버리고, 손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고 치료해야,

그래야 다른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새로운 장소, 새로운 모임에 나갔다.

내 생각보다 내 유머는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더라.

세상에는 그 사람만 있는 건 아닌데, 왜 그 사람을 붙잡고 힘들어했을까.


방에서 괴로움에 침잠하는 시간을 줄이고, 최대한 신나는 음악을 선곡하고 헬스장에 몸을 던졌다.

내가 해내지 못했던 일에 집착하기보단,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A는 못해도, B는 잘하는 것 같다.

A를 하는 건 다음 생으로 미루고, 이번 생에는 B를 해봐야겠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 것.

놓아 보내고, 흘려보내고

그 시간과 마음을 아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데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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