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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연 Mar 29. 2023

자존감에 대하여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한다.

나는 자존감이 낮았었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자존감에 대하여 수많은 책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고, 때로는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때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통증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취가 풀리는 것처럼, 좋다는 책을 읽고 조회수 100만이 넘는 자존감에 대한 강의 영상을 보아도 나는 다시 무너졌다.

사랑이 부서질 때, 일에서 과오를 저질렀을 때, 관계가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도전한 것이 실패하고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등등 내 자존이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또 그러고서도 구차하게, 근근이 살아내고 버텨냈고 때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유명인(편의상 A로 지칭)의 죽음에서 나는 큰 모순을 느낀 적이 있다.

A는 '객관적으로' 아주 성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외모는 빼어났고, 커리어도 화려했으며,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고, 도덕적으로도 흠결이 없는 삶을 사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A는 자신을 '주관적으로' 좋게 바라보지 않았고,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야 말았다.

나는 크게 애석해하며, A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던 중, 왜 A는 자신을 '주관적으로' 안 좋게 평가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A의 지인이 아니며, 미디어를 통해 A를 간접적으로 아는 정도의 사이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가 남긴 말과 행적들은 넉넉하게 A를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A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자신이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A의 장점을 좋아하고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는 그것을 보지 못한 상태로 괴로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괴로울 때마다 나의 '객관적인' 장단점과 성공했던 사례들을 적어놓은 메모를 본다.

그 메모장에는 내 단점도 적혀있지만, 보완하는 방법도 같이 적혀있다.

또한 내가 가진 장점도, 내가 들어보았던 칭찬도 적혀있다.

내가 실패했던 일과 사랑은 수없이 나를 괴롭히기에 굳이 적지 않고, 그 대신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성공했던 일들을 적어놓았다.

이 메모는 내가 무너질 때마다 '내가 그렇게 쓸모없는 놈은 아니구나.'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 구급약품함 같은 존재이며, 내가 넘어질 때마다 덜 다치게 해주는 무릎 보호대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때, 혹은 내가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가 크게 넘어져 부상을 당했을 때의 순간적인 고통일 수 있으며, 다시 회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더 이상 낮은 자존감에 고통받지도, 그것을 '올려야겠다.'라고 애쓰지도 않게 되었다.


반대로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그 사람(편의상 B로 지칭)은 항상 유머러스하고, 스몰 토크의 달인이었고, 자신감 넘치게 살았으며,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받는 사람이었다. B는 '주관적으로' 자신이 성공한 사람, 성공할 사람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객관적으로' B가 좋은 사람인지, 성공한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었다.

B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업무적으로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고, 부하 직원이 자신에게 맞춰주지 않으면 극렬하게 화를 내기도 하였다. 타인을 능력에 따라 심하게 평가하며 차별하고 무시하기도 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다 같은 월급쟁이 직장인인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B는 나이에 비해 경험과 연봉은 많은 편이었지만, 정작 업무적으로는 디테일과 전문성이 부족해 후배인 나에게 물어가며 해결해 나가는 일도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B를 만난 이후로는, 너무 높은 자존감도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게 하는 좋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자존감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으니 타인을 무례하게 대하지 말아야 하며,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니 '나 같은 놈은 ~ 하지 못할 거야.'라며 위축되어 살 필요도 없이,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면 된다.

또한, 자존감은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이벤트로 인해 일시적으로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니까, 순간적으로 낮아졌다고 해서 스스로가 쓸모없어진 것이 아니며, 순간적으로 높아졌다고 해서 거만해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실패했으니 힘들고 무너졌다면, 툭툭 털고 다시 도전하든, 다른 걸 하면 그만이다. 성공했으니 행복하고 날아갈 것 같다면,  언제든 다시 실패할 수 있으니 또다시 대비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가 수 없이 무너졌을 때, 나를 버티게 해 준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만족하되 민들레꽃을 부러워하지도, 닮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 손톱만 한 냉이꽃이 함박꽃이 크다고 하여 기죽어서 피어나지 않은 일이 있는가.
꽃과 침묵 中 일부, 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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