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었냐고 백 번을 물었던 날
8월 말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 두 달간의 가정보육도 끝이 났다. 하루 세 번의 식사와 세 번의 간식을 준비하며 정신없이 두 달을 보내니 남들은 살이 찐다는 미국에서 놀랍게도 출산 전 몸무게를 달성했다(물론 두 달 후 원상복귀).
큰애는 한국에서도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이였는데, 18개월이었던 둘째는 가정보육만 하다 처음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심지어 말도 안 통하는 곳으로 보내야 했기에 신경이 쓰였다. 24시간 육아모드가 가동될 때는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좀 보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막상 등원할 때가 다가오자 불안했다.
나도 힘든 이 환경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부담이 될지.
더욱이 아이들이 다니게 될 어린이집은 99% 백인아이들만 있었던 곳이라 주류의 아이들과 확연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다른 언어를 쓰는 우리 애가 얼마나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보내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그러나 어차피 겪어야 할 일, 조금 빨리 시작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 혼자 되뇌며 위안을 삼았다.
아이들 낮잠이불과 여벌 옷 등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서 등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의 저 신나는 발걸음을 보라! 아이들과는 다르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안으로 들어가니 온통 외국인들이다. (그렇지, 여기는 미국이니까.) 하나같이 금발 혹은 갈색 머리에 초록색,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의 우리 애들은 동동 떠다니는 섬 같다.
우리 딸은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세돌밖에 안 된 내 딸이 생김새도 말도 다른 아이들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낼 것인지! 내 눈앞이 캄캄하다. 떨어지기 망설여하는 아이를 한 번 꼭 안아 주고 나왔다.
"재밌게 놀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는 더 어렵다. 차마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아이의 등을 슬며시 떠밀어 보았다.
걸음도 겨우 걷는 아이를 낯선 환경에 두고 오자니 눈물이 난다. 혹시라도 힘들어하면 무조건 전화를 달라고 담당교사와 매니저에게 부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양쪽에서 내 팔을 붙잡고 품속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에게 지쳐 잠깐이라도 좀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들이 없는 집에 들어오니 너무나도 황량하다.
대충 집안일을 했다. 핸드폰을 꼭 쥔 채, 청소기로 카펫 구석구석을 밀고 쌓여 있던 빨래도 후딱 돌렸다. 연락이 오기를 혹은 오지 않기를 바라며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 둘째가 나를 찾는구나.
“헬로?”
미국 온 후 처음으로 받는 외부 전화에 어설픈 영어가 튀어나왔다.
“현서엄마니? 현서가 많이 우는데 올래?”
대충 이런 내용인 것 같다.
오케이 오케이.
또다시 어설픈 영어로 대답한 후 부리나케 뛰었다. 가는 동안 또 울었다.
대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1시간 만에 전화가 오지?
다시 찾아간 어린이집에서 우리 둘째는 눈물을 이미 한 바가지 쏟아 벌게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엄마가 미안하다 진짜. 엄마가 잘못했다, 내 아가야.
둘째를 꼭 끌어안고 돌아와 집에서도 계속 껴안고 있었다. 아침의 그 미안한 마음이 두 배가 되어 넘쳐흘렀다.
몇 분이나 아이를 안고 있다가 밥을 먹이고 낮잠도 꼭 껴안고 잤다. 왜 그렇게 죄책감이 들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이 너무 아프고 후회스러웠다.
둘째는 오전에만 잠깐 보내고 일찍 데려오는 적응 기간을 오래도록 가질 예정이다.
이럴 때면 내가 주부로 미국에 있는 것이 참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내 시간을 쓰는 것이 때로는 서글프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성취해 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오직 아이들의 세계를 단단하게 다져주는 이 시간에 집중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큰애는 3시 정도에 하원을 시키러 갔다. 다행히 첫 날치고는 잘 지낸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었어?”
“응.”
“정말?”
“응! 재미있었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아이가 도저히 믿기질 않아서 묻고 또 물었다.
"얼마나 재미있었어? 뭐가 재미있었어? 친구랑 놀았어? 어려운 말을 쓰지? 그래도 괜찮았어? 좋았어? 뭘 먹었어? 잠은 잘 잤어? 화장실은? 엄마는 안 보고 싶었어? 키즈하버드가 좋아, 여기가 좋아? 선생님은 어땠어?"
내 마음 하나 편하고자 아이를 붙잡고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과하게 기뻐하고 과하게 웃었다.
"와, 대단해! 최고야! 정말 대단한 걸? 멋지다! 엄마는 깜짝 놀랐어! 정말 최고야!"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도 갈 거야?”
엄마의 마음을 알고 그러는지 진짜 좋았는지 아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응!”
내일도 또 나는 똑같이 물을 것이다.
재미있었어? 정말?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나보다 훨씬 더 잘 해내는 아이에게 혼자 안심하고 싶어서.
처음이라 어설픈 미국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전 9시에 만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