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트 셀프 계산대에서 마주한 인생 최대의 시련
미국에 온 지도 어언 4개월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초록 잎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가득했던 여름이 슬며시 사그라들고 이제 온 동네가 예쁘게 물들기 시작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의 가을이 정말 좋다. 한국의 가을도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나가 즐기던 단풍놀이를 곳곳에서 즐기는 기분이다. 탁 트인 시야로 보이는 먼 산의 울긋불긋함이 내 마음도 불그스레 물들였다.
처음으로 혼자서 마트를 가야 했다. 항상 남편이 함께 가서 주된 일(?)들은 다 처리해 주었는데 막상 혼자 하려니 물건 사는 것도 떨린다. 집 앞 마트로 걸어가서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미국 마트는 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재밌게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크고 다양한 물건이 많다. 과일 야채 코너의 다양한 식재료부터 시작해서 베이커리 한 번 돌고 각 섹션을 S자로 훑으면 얼마나 볼 것이 많은지 모른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한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처음으로 혼자서 장을 보고 심지어 애들도 없으니 신이 났다.
우선 야채 코너에 정성스럽게 포장된 샐러드를 하나씩 다 살핀다. Spinach(시금치)는 왜 이렇게 많이 파는 거지? 여기는 시금치를 뜯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포장해 둔다. 꽤나 편리하다. 샐러드용 채소로 Spring mix도 많이 보이는데 뭐가 들어간 지는 아직도 모른다.
오! 두부도 판다. 근데 한 모가 3불이 넘는다. 엄청난 미국이다.
가장 만만한 바나나를 하나 잡아들었다. 다른 과일보다 훨씬 싼 것 같다. 빙글빙글 둘러보다가 베이커리로 갔더니 따끈한 도넛이 진열장에 줄 섰다. 사실 난 도넛을 좋아하지 않는데 미국 사람들은 도넛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한두 개 집어 먹어 보았다. 처음에는 혀가 얼얼하고 머리가 아플 정도의 단맛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않는 거 보면 내 혀가 마비된 게 아닌가 싶다.
역시 사람은 익숙한 것을 찾게 되는 건지 한국에서부터 열심히 먹던 몇 가지를 카트에 담았다. 바나나, 요구르트, 우유, 달걀… 유제품의 향연이다. 딱 필요한 것만 사고 계산대로 걸어 나왔다.
미국에는 셀프 계산대가 많아서 내 마음도 아주 편안하다. 개인적으로 계산대 앞에서 스몰톡을 시도하는 캐셔들이 두렵다.
특히 지난번 갔던 Trader Joe’s에서는 캐셔분이 세상 밝은 표정으로 "Good morning! How are you?"를 하시는데 "Fine, thank you, and you?"를 절대로 하지 않으려다 보니 "Good!" 하고 말았다. 괜히 단호하고 무뚝뚝한 동양인 여성이 되진 않았을지 조금은 신경 쓰인다.
아무튼 오늘 마트는 셀프 계산대가 있어서 부담 없이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셀프 계산대 앞에 서 있던 빨간 유니폼의 직원이 웃으며 쳐다본다.
아……
“Good morning!”
(굳은 미소를 날리며) 굿모닝! 잽싸게 대답하고 두 눈을 계산대에 두며 그곳으로 직행했다.
죄송해요. 전 아직 모든 게 낯설어요. 더 이상 말 걸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광광 눈물을 흘리며 물건을 삑삑 찍었다.
대망의 바나나 차례가 되었다. 바나나를 찍었는데 가격이 안 나온다. 삑! 했는데 안 된다.
Check 어쩌고 뭘 체크하라는 데 내가 뭘 해야 하는 건가. 놓친 게 있나, 잘못 찍었나, 대체 왜 이러지? 한 손에는 바나나를 들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아까 빨간 유니폼의 그를 쳐다보았다.
"Excuse me……" (침묵).
대충 눈치를 챈 그가 다가와서 행동으로 알려준다.
바나나는 바코드를 찍고 무게를 달아야 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내가 어떻게 미국에 살 수 있을까! 흘러내리는 멘탈과 눈물을 부여잡으며 캐셔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얼른 계산을 마쳤다.
타국에 산다는 것이 참 어렵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꼭 배우고 익혀야 할 것으로 바뀐다. 아, 이제껏 내가 우리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굉장히 편안한 삶을 살았구나!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집도 아니고 국가를 나왔으니 이보다 더 큰 시련이 어디 있으랴!
바나나 하나도 혼자서 못 사는 나란 사람! 스몰톡도 못하는 나란 사람!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오는 10분 동안 꽤나 심오하게 사색했다. 하지만 또 편안하게 있었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이 내 마음을 짜릿하게 만드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앞으로는 또 얼마나 나를 짜릿하게, 혹은 쿵쾅거리게 만들 일들이 많을까?
상당히 기대가 되는 나 홀로 첫 마트 쇼핑이었다.
심장이 쿵쾅대는 미국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전 9시에 만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