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이 중요한 이유
미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 가족의 경우, 남편의 오랜 희망이었던 박사학위를 위해 왔는데, 그렇다고 그만 힘들었던 건 아니다. 그는 그의 자리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묻어두고 앞을 향해 달렸다.
꼭 2인 3각을 하는 기분이었다.
누구 하나 삐끗하면 다른 한 사람이 더 많이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더 세게, 더 꼭 붙들고 달렸다.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동네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주립대가 있는 곳이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만난 이들 중에는 박사과정생이 가장 많았고, 석사나 학부 과정의 한국인들도 종종 보였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 초·중·고를 거쳐 대학원까지 ‘공부 루트’를 탄 사람들,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온 사람들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이곳에 와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달리는 사람들로 동네는 늘 분주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려면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행기표 예매부터 비자, 집 구하기, 은행 계좌 개설, 핸드폰 개통, 필요하면 자동차 구매까지. 영어 걱정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벅찬데 그 위에 행정과 생활이 얹힌다. 머리는 금세 포화 상태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어학원이나 각종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데, 그 과정에 만나는 사람들이 꽤 중요하다.
아니, 정말 중요하다.
얼마나 중요하냐 물으신다면,
평생 갈 친구나 배우자를 만나기도, 반대로 같은 주에 살면서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지인이 생기기도 한다고 답하겠다.
남편의 경우, 처음 만난 룸메이트와는 아직도 친한 친구로 남아 있지만, 또 다른 이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유학생의 삶은 치열하고 생동감 넘치는 만큼 감정의 진폭도 크다. 그래서 첫 만남이 남기는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나의 첫 만남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인 가정이었다.
남편이 먼저 1년을 살아 둔 덕에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왔다. 동네에 도착한 날, 집까지 안내해 주신 강박사님이 나의 첫 미국 인연이었다.
길고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공항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예쁜 아내와 딸을 둔, 말 그대로 따뜻한 가정이었다.
살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강박사님 아내분은 모든 것이 어색하고 막막했던 나에게 생활 정보를 하나씩 알려주셨다. 아직 차가 없던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동네 그로서리(마트)를 안내해 주셨고, 그때 처음으로 Trader Joe’s와 Wegmans를 가 보았다.
늘 아파트 주변 공원만 맴돌던 나에게, 그날은 “아, 내가 미국에 와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 날이었다.
한 푼이 아쉬워 마음껏 장바구니를 채우진 못했지만, 그저 새로운 공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나의 첫 미국을 그분들과 함께해서 참 감사하다.
아쉽게도 강박사님 가족은 우리가 들어온 지 두 달 만에 졸업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조금만 더 함께했더라면, 우리가 받은 도움을 더 많이 갚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뒤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보니 더 그렇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첫 만남이 되고 싶다.
비록 한인이 많이 오가는 동네는 아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쯤은 이제 나도 준비해 둘 수 있지 않을까.
첫 만남을 추억하며 애정으로 쓰는 미국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9시에 만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