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아과에서 당황한 한국 엄마

72시간을 버텨라!

by 다유

미국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세 가지를 말한다.


(나도 늘 무섭다),

인종차별(뭔가 나도 겪은 것 같다),

그리고 병원.

의외로 병원이 꼭 들어간다.


나 역시 남편의 첫 학기에 맞춰 미국으로 바로 오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둘째 때문이었다. 코비드 시기가 막 지나려 하던 때, 당시 100일 된 아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건너올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비로소 둘째가 16개월이 되었고, 이제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덜컥 바다를 건너왔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다르게, 우리 아이는 이곳의 바이러스들과 아직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둘째가 열이 났다.

한국에서는 코만 살짝 흘러도 똑닥 어플로 잽싸게 예약한 병원에서 항히스타민 처방을 받아 1200원 정도를 지불하고 나오면 마음이 세상 편하다.


아, 별일 아니구나!


조금 독한 감기에 걸려 컹컹 소리라도 나면, 또다시 똑닥으로 예약한 병원에서 항생제를 받아오면 됐다. 그러면 또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 나라는, 특히 내가 살던 작은 마을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당일 방문은 쉽지 않고, 갑작스레 아프면 ER(응급실)로 향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나는 아직 ER 문을 열어본 적은 없지만, 다녀온 사람들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아픈 것보다 지갑이 걱정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둘째가 열이 났을 때도 집 앞 마트에서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과 모트린(이부프로펜)을 사 두고 열보초에 들어갔다. 아이가 아픈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남편의 한갓진 뒷모습을 보며 어서 병원 예약을 하라고 앙칼지게 잔소리를 했고, 다행히 다음 날 우리는 소아과에 방문할 수 있었다.


친절한 Dr. 올리베로는 열이 나는 아이의 콧구멍을 찔러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 결과는 리노바이러스. 이름만 들으면 꽤 위협적이지만 결국 그냥 감기라는 뜻이다.


항생제는 필요 없고 물을 많이 마시고 오렌지 주스를 주란다.

잠시만. 이게 맞아?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Drink water and sleep well.
아픈 아이에게 의사가 하는 말로 학생들은 열심히 외운다.

나는 그 문장이 이렇게 현실적인 처방일 줄은 몰랐다.


밤새 열이 나는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시간 맞춰 해열제를 먹이고, 물과 오렌지주스를 주는 것뿐이었다. 안 그래도 건강 염려증이 있는 나는 비접촉 체온계로 아이의 열을 계속 쟀다. 몇 분 간격으로, 다시 또다시.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싶었다.




딱 3일.

72시간이 지나자 열이 내렸다. 아이는 기운을 찾았고, 코는 일주일쯤 지나 줄어들었다. 증상이 시작된 지 2주 만에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감기는 약 먹으면 2주, 약 안 먹으면 14일 만에 낫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인간의 면역력을 꽤 깊이 신뢰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약 대신 시간을 믿는 구조.

처음에는 불안하고, 솔직히 화도 나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보니, 아이의 몸뿐 아니라 내 마음도 조금 단단해진 것 같다.


이제는 아이들이 열이 나면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72시간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5일 이상 열이 지속되면 병원으로 오라는 의사의 말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전까지는 그저 살펴보기만 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 아이들이 위급한 상황으로 병원을 찾은 적은 없다. 그럼에도 나의 레이더는 24시간 삐용삐용 돌아간다.

혹시나 아플까 봐, 아프면 안 되니까 마음을 졸이는 미국 생활이다.


약이 마음을 안심시켜 주던 한국을 지나, 웬만해선 인간의 치유력을 먼저 믿는 미국에 살며 나는 조금 덜 불안한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체온계는 아직 안 버렸다.


언제쯤이면 익숙해질까요?

어설픈 미국살이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9시에 만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