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간절하게 찾습니다
나는 개신교 신자다. 원래는 신실한 불교 신자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살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심히 절에 다니셨는데, 나도 어릴 적에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절을 놀이터 삼아 다녔다.
그 습관이 무서웠던 건지, 20대 중반까지도 나의 불심은 너무나 강했다. 수능시험 전에는 매일같이 신묘장구대다라니경을 읊고 20대가 되고부터는 아침마다 빠짐없이 108배를 했다.
절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 교회도 참 열심히 다닌다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 아마 나는 기본적으로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개인적인 이유로 개종을 했기에 모태신앙인 교인들에게는 날라리 신자로 보일지 모르나, 나름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우리 남편은 철저한 무신론자로 20대 중반에 할아버지의 권유로 가톨릭 세례를 받은 자였다. 그런 우리 남편이 미국 생활이 힘들었는지 한인성당 미사에 몇 번 참석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한 분 이 시니 내가 어딜 간들 똑같겠지!'라는 생각으로 남편을 따라 한인성당을 나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마을에 뚝 떨어져, 공부를 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내가 항상 힘들었던 것은 내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공동체지, 그저 대화를 나누고 가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는데 한인성당을 나가니 몇 가정이 계셔서 참으로 반가웠다.
하지만 그 기쁜 마음은 몇 주가 지난 후 사라졌다. 그들과 나 사이에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었던 탓이었다.
모두 각자 일을 하며 바쁘신 분들이었고, 우리 아이들 또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막 건너온 한국인이었고 영어도 서툴렀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였다. 나이도 자라온 환경도 다르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어울리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나 또한 집에서만 지내던 가정주부였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대화들로 가득한 모임에서 외로움만 더 커질 뿐이었다. 적응하지 못하던 나를 보고 우리 남편 역시 꽤나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학업이든 일이든, 나는 항상 속한 집단이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토록 외로운 일인지 미처 몰랐는데, 겪고 보니 나의 경험과 지식이란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이 타인을 파악하는 잣대가 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참으로도 낯설고도 거대한 이 미국 땅에서 내가 살아온 방향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터였다.
아무튼 나에게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내 외로움을 나누고 어려움을 이해받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다.
용기를 좀 더 내어 정보를 찾아보았다. 강 박사님의 와이프분께서 알려주신 ESL class가 떠올랐다.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class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영어 수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학교의 지원으로 무료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에 뭐든 해 보자는 심정으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낯선 땅, 낯선 환경,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영어라는 큰 산이 나를 내려보며 턱하고 막았지만 넘지 않으면 답이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 볼 수밖에.
산을 넘어가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매주 목요일 9시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