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차가 없을 뿐인데

대단히 호기롭게 벤츠를 꿈꿨다

by 다유

내가 경험했던 미국은 항상 화려하고 빛났다. 그야말로 ‘Fancy’했다. 정수리를 때리는 태양, 높지만 여유 있게 반짝거리는 빌딩들, 선글라스를 쓴 채 미소 짓는 미국인들의 너그러움까지. 그뿐이랴. 광활하다 못해 숙연해지는 그랜드캐년과 온통 초록빛이었던 요세미티까지, 미국은 내 눈과 귀와 코를 자극하는 이국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낡은 시외버스 같은 비행기를 타고 디트로이트를 출발해 도착한 이 동네는 내가 알던 미국과는 사뭇 달랐다. 돌돌거리는 수화물 벨트 위 28인치 캐리어가 유난히 커 보일 만큼, 앞으로 살아갈 동네는 서울도 부산도 광주도 아닌 어느 ‘군’이나 ‘읍’에 속할 것 같은 단정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80년대 스타일의 구릿빛 열쇠를 받아 동그란 손잡이를 돌리고 들어간 그 집에서, 우리의 진짜 미국 살이가 시작되었다.




당장 차를 사야 했다.

그런데 차 값이, 3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한 나는 도저히 모를 이유로 굉장히 비쌌다. 심지어 중고차가 신차보다 비싼 기이한 현상까지 목격했다. 아마 당시에 신차를 사려면 상당히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대한민국에서 길러온 허세가 남았던 탓일까.

“여기까지 왔는데 독일 3사 차는 한번 타봐야지”

라는 정신 나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타다가 한국 가져가면 되지 뭐. 애 둘 카시트를 해도 여유가 생기게 3열 SUV는 돼야지 싶어 벤츠부터 살폈다. 중고가 6만 불 정도.

꽤 괜찮아 보였다.


아직 이 동네 흐름과 우리 주머니 사정을 전혀 못 읽을 때였다. 내 제안에 남편의 진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라는 뜻이다.

“그래? 그럼 GV80?”

그건 8만 불이었다. 조용히 창을 닫았다. 잠깐만,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 후로 사흘 정도 차 값을 검색하지 않았고, 나는 남편과 일방적인 토론을 시작하게 되었다.


럭셔리 No, 3열 No,
3만 불대로 해결한다.


이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의견이었으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난 늘 졌고 그는 늘 이겼다. 또 그가 이길 것이었다.


결국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중고차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신차 시장을 살펴보는데 동네 혼다 대리점에 신차가 있었다!

미국에서 인기 많은 혼다나 도요타는 나중에 중고로 팔기에도 좋다. 벤츠에서 허망함을 느낀 내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었던 것이 혼다였는데 마침 신차가 있다는 것이다. 모델까지 우아하게 선택할 처지는 아니었기에 그저 있는 차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 두 달 정도 걸린단다.


두 달 정도는 그래, 차 없이 살 수 있겠지.


미국에서 차 없이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집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일반적인 미국 하우스에서는 차 없이 살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렌트했고, 집 앞에 버스 정류장과 작은 마트(Grocery)가 있었다.

두 달 쯤이야 까짓것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내 7월은 집, 마트, 공원을 뺑뺑이 돌며 하루를 보내는 날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16개월, 41개월 두 아이를 24시간 돌보며 누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지도 못한 채 집, 마트, 공원을 루틴 삼아 한 달을 지냈다.

난 참으로 느긋하고 소위 말하는 도파민 중독자가 아니기에 차가 나오기 전까지 이 생활을 충분히 즐길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겨웠다. 정말 심심하고 지겨워 죽겠더라.


집, 마트, 공원, 집, 마트, 공원... 대체 난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지냈나 모르겠다. 7시에 등교하고 12시에 귀가한 그 시절의 열정과 낭만이 혹시나 왜곡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그 생활을 꼬박 한 달을 하니 혼자서 애 둘 키우던 한국에서의 짜증과 스트레스가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며 같이 사는 저 남자의 동그란 뒤통수가 참으로 뵈기가 싫었다.

차만 없을 뿐인데 미국의 생활은 난이도 극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랄까! 심심해서 못 견디던 그 7월, 나는 뜬금없이 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그때부터 기록한 나의 영상들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지긋지긋했던 경험도 쓸모가 있다더니!


*무척이나 호기롭던 미국 생존기, 다음 주 목요일 아침 9시에 계속됩니다. 구독하고 함께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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