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5월의 신문 기사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5월 5일이라니 동공원의 벚꽃이 만개했겠지요. 야앵대회, 그러니까 밤벚꽃놀이가 한창이었겠지요. 꽃구경을 나선다고 곱게 단장을 했을까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화장을 환하게 했을까요. 꽃구경을 나갔다가 죽고 싶어진 것일까요. 죽고 싶어서 꽃구경을 간 것일까요. 죽기 전에 꽃구경이나 한번 하자고 다짐했을까요. 외로운 길을 함께 가자고 수건을 묶던 손은 얼마나 떨렸을까요. 생에 실패하고 죽음에도 실패할까 단단히 매듭을 지었을까요. 벅차게 아름다운 봄날이라 죽기에 더욱 적당했을까요.
두 여인이 월미도에서 익사
어제 4일 아침 9시 경에 인천 월미도에 있는 조선 사람들 사는 촌락 앞 바닷가에 젊은 여자 시체 둘이 떠있는 것을 지나가던 목선에서 발견하고 곧 수상경찰서로 보고하였으므로, 수상서에서는 급히 현장에 출장하여 검시한 결과 죽기는 지난 3일 밤 8시 경에 물에 빠져 죽은 듯하다 하며 그 두 여자는 인천 내리 일번지 술장사하는 최군일의 집에서 고용하는 여자로 한 여자는 이채운이라는 24살된 여자요, 한 여자는 김채봉이라는 27살 된 여자인데 또 이채운은 290원, 김채봉은 160원에 팔려 와서 그 술집에서 손님이나 대접하고 세월을 보내는 가련한 여자들인데, 그 죽은 원인은 알 수가 없으나 전기 두 여자가 그 날 나가기는 월미도로 꽃구경하러 간다고 나갔었는데 뜻 없는 생활을 비관하여 그와 같이 빠져 죽은 것인 듯하다 하며 두 여자가 수건으로 허리를 서로 매고 빠졌다더라.
-조선일보, (1924. 5. 5)
1926년부터는 월미도로 가는 특별 납량열차가 운행되면서 월미도의 한여름 밤은 더위를 피하려는 캠핑족들로 넘실거리고요. ‘월미도’라고 하면 어쩐지 에로틱한 약속이 기대되고 젊은 남녀의 밀회가 이루어지는 사랑의 섬으로 연상되었다고 합니다. 고 신태범 박사는 19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전시 호황을 누리게 되어 인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과 각 지방에서 돈 있는 유흥객이 기차 편으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운집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승합자동차라고 부르던 소형버스가 중앙동에서 인천역을 거쳐 조탕까지 운행하고 있고 교통도 편리했다고요.
월미도는 요정과 호텔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전국 유일한 임해유원지로 이름을 떨치는데요. 조탕 시설과 인공해수풀장 외에도 만조 때 바닷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정 용궁각과 하마(濱)호텔이 들어서며 더욱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용궁각(龍宮閣)은 월미도 해상에 만든 요정입니다. 만조 때는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고 해요. “이 용궁각은 바다우에 소슨만치 난간우에서 낙시질하기 알맞은 설비가 있다.”는 기사(동아일보 1937. 6. 15) 에서 볼 수 있듯 납량을 위해 방문한 고급 손님을 대상으로 한 시설이었습니다. 월미도 조탕 본관에서 약 130 미터의 긴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200평 규모의 요리점으로 17개의 방과 약 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이 있고요. 건물은 해저 암반에서 직경 90센티미터, 길이 9미터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 50개로 받쳐져 있는데 건물은 경복궁의 경회루를 모방하여 크고 다채롭게 만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