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시대의 문학
이 시대, 월미도를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도 있어요. 이효석의 소설 「주리야」(1933)에서 민호가 주리야와의 육체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 마음의 유혹을 느낀 곳이 월미도입니다. 이광수 「사랑」(1938)의 여주인공 석순옥이 단지 남자와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약혼했다는 소문이 나돈 곳 역시 월미도입니다. 한용운 「박명」(1938~1939)의 주인공인 장순영의 운명이 틀어진 것도 월미도에서 만난 한 남자 때문입니다. 월미도는 남녀의 운명이 엮이고 몸과 마음이 엮이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로 상상된 것이지요.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하게 되었을까요. 일탈을 하게 되어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을까요. 다른 장소와 시간이 운명의 축을 뒤흔드는 것일까요. 마음이 섬을 만들어 그리로 도망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일본의 식민지 문화정책은 회사령, 토지조사사업(1910), 조선교육령(1911), 치안유지법(1925) 등으로 이루어졌고요. 반식민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3·1운동(1919)이 있었고요. 동인지가 활발하게 만들어졌고요(1930). 반면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 지원병제도(1938), 창씨개명운동, 한국어사용 금지 등의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말과 글은 한국문학과 식민지 민족어로서만 존재하였는데요. 3·1운동 직후 민간 신문과 대중잡지의 간행이 가능해지면서 국어와 국문의 문화적 기능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민간 중심으로 한국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요.
당시 현대소설은 객관적 현실을 전체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을 지속하였습니다. 계몽시대에 성행했던 ‘신소설’은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의식이나 사회 계몽적 기능은 약화되고 오락성이 소설의 주체가 됩니다. 현대희곡은 외래적 문학 형태로서의 희곡을 한국어를 통해 한국문학의 형태로 재창조하게 됩니다. 현대시는 한국인의 정서와 호흡에 근거한 시적 리듬을 발견하고 자유시를 한국적 토양에 정착시켰다고 합니다. 특히 형식의 실험이 다양하게 이루어졌고 자유시가 정착하게 됩니다. 1930년대는 일본의 강압적 사상 탄압이 이루어지면서 집단적 이념의 논의가 용납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동인활동이 이어지고요. 김기림, 최재서 등의 시인을 중심으로 모더니즘이 등장합니다. 정지용, 김영랑, 이상, 백석, 오장환, 유치환, 이육사, 윤동주 등의 시인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인천 제물포의 풍광이 근대적 정감으로 등장한 것은 소월의 시 「밤」이라고 합니다. 1922년 『개벽』으로 등단하면서 발표한 시인데요. 소월 특유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형상화된 시로 평가받습니다.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밤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데요.
이곳은 인천의 제물포, 이름난 돗,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김소월, 「밤」 부분
2019년 광복절에 현 대통령의 기념사로 인용된 김기림 시인의 시가 있어요. 시인이 1948년 발표한 「새나라 송(頌)」이라는 시 중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라는 대목입니다. 그는 190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고요. 특히 I. 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다고 해요. 윤동주 시인이 자기반성의 시를 쓰며 어두운 밤하늘의 별로 스러져가고, 이상 시인이 술에 취해 카페를 전전하던 시절을 거쳐 마침내 광복을 맞이한 시점이었지요. 이 시가 시적 감각은 덜하다는 평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광복이 되었으니까요. 기쁨과 감사와 찬탄과 긍정과 열망과 영광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기대하고 바라고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
녹슬은 궤도에 우리들의 기관차 달리자
전쟁에 해어진 화차와 트럭에
벽돌을 싣자 세멘을 올리자
애매한 지배와 굴욕이 좀먹던 부락과 나루에
내 나라 굳은 터 다져 가자
-김기림, 「새나라 송(頌)」 부분
그는 다음과 같은 시도 썼습니다. (1939년 <여성>에 발표) 시를 전혀 모르던 시절부터 제가 좋아하던 시입니다. 거대한 바다와 미소한 나비의 대비, 검푸른 파도와 흰 나비를 상상하며 아슬아슬한 전율이 일었습니다. 알 수 없는 생과 사의 접경 같은 것도 느꼈고요.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일어나기를 바라는 폭풍 전야의 심정이 되기도 하였는데 그 시가 이렇게나 오래된 시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전문
김기림 시인이 인천 제물포를 배경으로 쓴 시도 있습니다. 1936년 『조광』에 발효한 연작시이자 일종의 기행 시인데요. 시 속에 등장하는 서쪽 노을도 검은 조수도 항구도 푸른 모래밭과 갈매기도 그대로입니다. 식민지라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불안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의 생몰연대의 끝부분은 물음표인데요.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기차>
모닥불의 붉음을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갑니다.
<인천>
「메이드·인·아메-리카」의
성냥개비나
사공의 「포케트」에 있는 까닭에
바다의 비린내를 다물었습니다.
밤 항구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어둠 속에 숨어서야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
- 김기림, 「길에서-제물포 풍경」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