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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18. 2024

부재는 존재를 증명합니다


흰 몸의 여인이 오른팔에 고개를 묻은 채 엎드려 있습니다. 눈발이 쏟아지는 겨울, 먼 나라의 백화점 전시장이라니 참 고단한 여정입니다. ‘젊은 여성의 캐스트’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오전 8시 지진 발생, 오후 1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다음 날 오전 6시 도시 매몰. 모든 존재가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 단 하루.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유물들은 영원에 가깝게 존재하겠지요.       


“캐스트(cast)”는 원래의 것은 사라지고 몰드만 남은 자리에 퇴적물이 채워져서 원래 물체의 모습을 복원한 화석화 작용입니다. 완전히 녹아 사라진 육체는 겹겹의 재 속에 묻힌 채 보존되었습니다. 텅 빈 공간에 석고를 붓자 굳어가며 형체를 이루었다고요. 장미 비누 틀이 몰드, 장미 비누가 캐스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미가 부재하는 모형 속에서 실재하는 장미비누를 피워냈다면, 사람이 존재했던 모형 속에서 부재하는 사람을 찍어낸 셈인가요.      


부재는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것만큼 명확한 방식이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 끝나버린 관계, 잃어버린 물건들... 입에 붙은 이름을 부르다가 깨닫겠지요. 손을 더듬어 찾다가 깨닫겠지요. 그런 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겠지요. 아니지, 없지, 하면서도 있을 듯하여 헛된 꿈속을 헤매기도 하겠습니다.


젊은 여성의 캐스트(폼페이 유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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