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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22. 2024

십 분

새로운 단어를 배웠습니다. 포쇄.


포쇄(曝曬)는 '젖거나 축축한 것을 바람을 쐬고 볕에 놓는' 것이랍니다. 돌보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던 것들을 살피는 일이지요.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눅눅해진 책들을, 마음들을, 관계들을 위해서요.


가장 먼저 나 자신에 대한 포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햇빛 설거지라도 해야겠어요. 말간 햇살 아래 가만히 있는 거요. 묵은 그릇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지요. 개수대 설거지, 세탁 종료음, 배송 안내 문자가 와도 그냥 두고 환한 곳에서 십 분만 쉬어 가려고요.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 삼으려고요. 그것은 명상일 수도 있고 멍 때리기 일 수도 있겠습니다. 계획, 목표, 숙제 그런 것들 내버려 두고 이기적으로요. 그다음에 세상 속으로 나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어째서 밥은 하고 또 해야 하는지, 어째서 먼지는 치우고 또 치워야 하는지, 정리가 안 되는 방은 왜 때문인지, 버려도 버릴 것들이 새끼를 치는 것 같고,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김없이 표가 나는 걸까요. 눈길이 닿는 것들 먼저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이 없고요.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라리곤 하지요. 화를 낼 수도 없어요. 딱히 누가 잘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럴 때면 십 분만 쉬었다가 들어가려고요. 그래야 감정이 태도가 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이 또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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