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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26. 2024

쓸모없어지기 위한 노력


훈몽자회에는 잘생긴 나무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아무도 베어가지 않고 있나 의아해하자 스승이 말합니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고, 관을 만들면 쉬 썩을 것이며, 그릇을 만들면 속히 깨질 것이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를 것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먹을 것이라고요. 아무 쓸 데가 없어서 이렇게 수명이 긴 것이라고요.


나무 입장에서 보면 길고 긴 세월, 무수히 많은 실험과 시도가 있었겠어요. 물에 가라앉을 정도의 무게라거나 목질 속 공기의 부재라거나 땅속에서는 금방 썩어야 하고요. 말리고 다듬어 그릇의 형태를 만들면 스스로 깨질 정도의 절대파열력(제 맘대로 붙여봅니다), 집안에 경첩을 달아 박아두면 내부로부터 진물을 짜내야 하고요. 길게 잘라 세워놓으면 좀을 끌어들일 풍미를 갖춰야 했겠지요. 생존을 위한 자기 계발의 극적인 성공사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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