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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26. 2024

저는 언제나 잘 도착했는걸요


언니. 우리 집 통금 있었던 거 알지? 늦어도 열한 시까지는 반드시 귀가를 해야 했잖아. 어딜 가도 눈도장만 찍고 나오는 거지. 좀 재미있어지려고 하면 나오는 식이야. 분위기 망친다고 욕 엄청 먹었어. 요새도 그런 집이 있냐고 못 믿는 눈치였어. 그러고 어떻게 학교며 회사를 다녔나 몰라. 그래서 승진을 못 한 것도 같아. 답답했지. 짜증도 나고. 그런데 늦으면 골목에서 내내 서성거리시는 걸 아니까, 늦도록 못 주무시는 걸 아니까 택시 타고 달려가곤 했어. 엄마는 이쪽 골목 아빠는 저쪽 골목을 지키는 식이었어. 두 분 다 심장이 안 좋으니 걱정시키지 말라고 겁을 잔뜩 주셨거든. 세상이 너무 위험하다고 나쁜 놈들이 가득하다고 몇 번이고 강조를 하셨어. 여행? 못 갔지. 알잖아. 언니들이랑 가는 여행 나는 한 번도 못 갔잖아. 졸업여행? 당연히 못 갔지. 아마 나만 못 갔을 걸. 남녀공학 다니면서 연애 한 번 못한 건 나밖에 없을 거야. 늦게라도 결혼하고 좋은 게 그거였어. 언제 오니, 왜 안 오니, 어디쯤이니 그런 소리 안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 우리 신랑? 늦어도 괜찮다고 하던데. 언제 오는지 미리 말만 해주면 알아서 시켜 먹고 게임한다고 좋아하는 눈치야. 근데 나도 퇴근하면 바로 집에 오고 싶더라. 얼른 쉬고 싶어서. 나 결혼식 날 밤에 말이야. 우리 엄마아빠 한 잔 두 잔 드시다가  만취해 갖고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셨대. 외동딸 시집보내는 마음이 오죽했겠어. 요즘? 그냥저냥 지내셔. 어디가 크게 아프신 건 아닌데 자꾸 불안 불안해. 가면 물어보시는 게 많지. 인터넷 주문이며 휴대폰 동작법이며 쌓아두고는 물어보시지. 뵈러 갔다 집에 올 때면 동네를 다 빠져나올 때까지 대문 앞에 서 계셔. 손을 높이 들고서 말이야. 그리고는 몇 번이고 전화를 하시지. 길은 안 막히는지, 안전벨트 잘 맸는지, 잘 도착했는지. 그럼요. 차도 안 막히고, 안전벨트 잘 맸고, 다 왔다고 벌써 집 앞이라고 하지.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려. 엄마아빠. 저는 언제나 잘 도착했는걸요. 이제 제발 걱정은 그만하세요. 그리고는 꼭 맥주 한 캔을 따게 되더라. 근데 말이야. 엄마아빠가 내 걱정을 하나도 한 하시는 날은 영영 이별하는 날이 될 것 같아서 좀 무서워.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잘 주무시라고 문자를 보내지. 붉은 하트를 넣어서.       


(정말로 그분들의 염려 덕분에 네가 이렇게 잘살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는 나도 맥주를 한 캔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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