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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29. 2024

좋은 게 좋은 것이기를 바라지만


P는 사진을 보여준다. 칼을 샀다고, 일본 식도라고, 멋있지 않냐고, 기가 막히게 잘 든다고 그걸로 그 자식을 어떻게 할 수도 있다고 하고는 깔깔 웃는다, 농담이라고. 아귀찜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맛있게 했는지 그 자식이 진짜 아귀처럼 먹었다고, 배 터져서 죽나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고는 또 깔깔 웃는다, 농담이라고. 요즘 운동을 시작했다고 보여준 사진 속 그녀는 흰 도복을 입고 있다. 유도를 시작했다고. 어째서 유도인가 물으니 언젠가 꽉 졸라서 죽일 거라며 또 웃는다, 농담이라며. 왜 같은 농담을 하는 걸까. 그 속에 어떤 뼈가 있는 걸까. 무슨 농담을 맨날 그렇게 하냐고 등을 한 대 쳐주는데 좀 무섭고 겁이 난다.

유도(柔道)는 ‘부드러운 길’이라는 의미다. 1882년 가노 지고로가 벚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굵은 가지는 눈의 무게에 부러져버리는데 가늘고 부드러운 가지는 저절로 휘어져 눈이 떨어지게 만들었다고. 그것을 보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 부부가 유도하듯 맨손으로 맞잡는 상상을 한다. 상대를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정면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가만히 있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울음이 터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어떻게든 쌓인 감정을 풀었으면 좋겠다.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정으로 사는 게 부부라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다들 그러고 산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좋은 게 좋은 것이기를 바라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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