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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29. 2024

신림역 비둘기들


신림역 지하에는 비둘기들이 삽니다. 조금 날고 주로 종종거리죠. 구구, 울지도 않습니다. 허기에 맞서는 용맹스러운 녀석들입니다. 일부러 제 몫에서 떼어주는 사람도 있고, 놀라서 소리치는 사람도 있고, 슬며시 조금씩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네요. 저는 구경을 담당하는 중입니다만.


불경에서 인간 세계는 욕계입니다. 무수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허기와 먹기는 세트로 작동되면서 다른 욕망의 기단이 되겠습니다. 일단 배가 채워져야 그다음 욕망을 향해 분광하니까요. 음욕과 수면욕까지 합체하면 욕계삼욕(欲界三欲)이 됩니다. 비둘기들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만두며 어묵, 떡볶이며 호두과자, 붕어빵이며 꼬마김밥 앞에 서있는 우리들 모두가 희고 검고 거의 날지 않는 비둘기들처럼 보입니다. 일단 뭐 좀 먹고 생각하자며 오늘의 메뉴를 고르지요. 뜨끈한 어묵은 국물까지 참 맛있네요. 기어이 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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