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숙 되는 인간

by 김박은경

후숙 과일이 익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열흘은 되었는데 아직 푸른빛, 단단합니다. 이리저리 둥근 것을 돌려 눕히고 살피다 보니 포란하는 어미닭의 기분입니다. 애플망고를 익히는 중이고요. 붉은빛으로 변할 것, 복숭아처럼 말랑해질 것, 두 가지를 기준 삼고 있습니다. 처음 맛볼 예정입니다. 설명서에는 호주, 페루산이라는데요. 호주면 호주고 페루면 페루지 무슨.. 애플이면 애플이고 망고면 망고지 무슨.. 하면서 기다립니다.


사과 곁에 두면 후숙속도를 당길 수 있다는데 그냥 두고 보는 맛이 좋네요. 먹는 것보다 먹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맛나요. 익을 것이라는 기대, 익고 있다는 확신은 정확한 행복을 줍니다. 인간은 좋아질 거라는 일말의 꿈만으로도 어질어질한 협곡을 건너갈 수 있는 존재니까요. 인간은 길고 긴, 아니 평생에 걸친 후숙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 익으면 시간이 삼키려나요. 아무튼 오늘도 잘 익어가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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