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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29. 2024

후숙 되는 인간

후숙 과일이 익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열흘은 되었는데 아직 푸른빛, 단단합니다. 이리저리 둥근 것을 돌려 눕히고 살피다 보니 포란하는 어미닭의 기분입니다. 애플망고를 익히는 중이고요. 붉은빛으로 변할 것, 복숭아처럼 말랑해질 것, 두 가지를 기준 삼고 있습니다. 처음 맛볼 예정입니다. 설명서에는 호주, 페루산이라는데요. 호주면 호주고 페루면 페루지 무슨.. 애플이면 애플이고 망고면 망고지 무슨.. 하면서 기다립니다.


사과 곁에 두면 후숙속도를 당길 수 있다는데 그냥 두고 보는 맛이 좋네요. 먹는 것보다 먹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맛나요. 익을 것이라는 기대, 익고 있다는 확신은 정확한 행복을 줍니다. 인간은 좋아질 거라는 일말의 꿈만으로도 어질어질한 협곡을 건너갈 수 있는 존재니까요. 인간은 길고 긴, 아니 평생에 걸친 후숙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 익으면 시간이 삼키려나요. 아무튼 오늘도 잘 익어가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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