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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28. 2024

글쓰기의 거품으로 다음 글쓰기

아이비 좋아하세요? 교복요? 가수요? 식물요? 과자요? 만약 과자라면 참은 어떠세요? 매우  비슷한 친구들입니다. 둘 다 정사각형 거의 같은 사이즈에 구멍도 열세 개, 똑같아요. 둘 다 가장자리에 톱니 같은 모양이 있고, 둘 다 표면이 울퉁불퉁하면서 돌출된 부분이 노릇하게 구워졌습니다.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차이라면 참은 가운데 점선이 있어서 깨끗하게 자를 수 있어요. 식감은 아이비가 조금 더 바삭거리는 것 같습니다. 가격은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아이비가 조금 더 비싸네요. 둘 다 소금으로 간을 한 담백한 스낵이면서 카나페 만들기에 좋습니다. 이렇게 관찰하며 음미하면 천천히 먹게 됩니다.

  

피로해서 커피를 마시려다 보니 어쩐지 허기가 져서 간식을 찾았는데요. 몸에 좋은 간식도 많지만 그런 건 맛이 덜하니까요. 달고 짠 과자를 먹고 싶은데 마침 그런 게 없군요. 식구들도 자극적인 과자가 당긴 모양입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데 오늘 더 졸린 까닭은 며칠째 늦게 잔 탓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는 반드시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쓰고 싶고 읽고 싶은 게 있어도 조금 참읍시다.


급한 허기를 채웠으니  소고기 뭇국을 끓입니다. 쉬워요. 재료는 소고기 조금, 무 조금, 마늘과 파, 간은 국간장과 소금이나 참치액 정도면 됩니다. 포인트는 오래 끓이기, 끓인 후 거품 걷어내기, 두 가지 정도죠. 거품은 불순물입니다. 거품은 가볍습니다. 그 속엔 알 수 없는 것들이 들어 있어요. 색은 거뭇거뭇하고 희끗희끗하고 전체적으로는 먼지덩어리 같기도 하고 모래 같기도 합니다. 그것을 조심히 걷어내야 국물 맛이 깨끗해져요. ‘그것’이라고 했지만 ‘그것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품의 세계란 알 수 없는 수만 가지의 복합체 같으니까요. 어쩌면 각각의 재료들이 살아온 시간과 장소와 기억들이 떨어져 나와 뒤섞인 것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글쓰기에서도 거품 걷어내기는 필수입니다. 글을 얼마나 고치세요? 거품은 작고 가볍다는 특징이 있지만 글에서는 작지만 무거운 거품도 있습니다. 물론 크고 가벼운 경우도 있고요. 그럴 땐 덜어내서 그걸로 새로운 요리를 하는 편이 낫습니다. 소고기 감자 뭇국 같은 건 잡탕이니까요. 제각각 소중한 재료이니 다른 냄비에 올리는 편이 낫습니다. 처음부터 잡탕을 의도할 수도 있고, 하다 보니 만들어진 잡탕을 새로운 감각으로 즐길 수도 있겠지만요. 글은 쓰면 쓸수록 쓰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글감이 되려고 파닥 거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안 쓰면 못 쓰고 쓰고 싶은 것들이 다 사라져요. 그래도 밤잠을 설치며 읽고 쓰다 보면 정확하게 간이 맞는 국물에 충분히 부드러운 무 건더기를 둥근 수저로 건져 올리는 시간이 오겠지요. 배도 든든하고 정신도 충만해질 것 같습니다.(이렇게 끝나는 게 아름다운 결말입니다만)     


이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첫 번째 거품이 보이네요. '아이비와 참크래커' 이야기요. 둘 다 맛있는 녀석들이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조금 다른 또 하루'라는 이야기요. 매일이 다 조금씩 다르니 엄청 커다란 글감입니다. 세 번째, '거품의 세계'가 있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있을까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글감이 될 수 있습니다. 시로 써도 좋겠어요. 짧은 글 속의 거품을 살펴보니 수많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잇고 꼬리를 치는군요. 이렇게 이어가다 보면 노래처럼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오겠어요.(전체적으로는 이 글에서 굵은 활자체만 살리는 편이 깔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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