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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01. 2024

굿이라는 기도

영화 <파묘>에서는 대살굿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동물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굿이라고요. 악지의 묘를 이장하다가 안 좋은 기운이 인부들에게 들지 않도록 무속인이 이를 대신 받아 날려버리는 원리라고요. 그렇다면 귀신을 속일 수도 있나 봅니다.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으니, 귀신보다 사람이 더 매서운 눈을 가진 걸까요. 귀신을 달랠 수도 있다면 이집트 피라미드를 파낼 때도 우리의 대살굿을 좀 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상상도 해봅니다. 귀신이 있나 없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서워져요. 귀신은 왜 무서울까요. 죽은 자는 왜 공포를 불러일으킬까요. 최고의 미지라서 그런 걸까요.  


굿 장면을 보니 오래전 기억이 살아납니다. 넓은 마당집 바깥채에 차려진 할머니의 신당에는 알록달록한 천이며 부처님과 흔들리는 촛불과 진한 향냄새가 났어요. 선바위에 굿하러 갈 때도 따라갔는데요. 선바위라는 곳이 지금도 여럿 있던데 어느 선바위인지 모르겠어요. 어른들은 모두 굿하는 데에 모여계시고, 무당은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음악은 정신을 쏙 빼놓는데 덥고 지루하고 답답해서 돌계단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옵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렸어요. 구불구불 선을 긋다가 선을 넘어가는 개미를 구경하면서요. 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네요. 엄마는 무당 앞에서 절을 하고 계셨을 거예요. 무당이 호통을 치고 엄마는 허리를 구부리고,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무당의 옷에 지폐를 꽂아주는 여인들, 아이구 네 그럼요 하던 추임새도요.


정재승 교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뇌피질이 더 두껍다는 연구 결과를 전합니다. 종교학자, 철학자, 물리학자, 심리학자에 이어  신경과학자들까지 연구에 합세한 결과 종교를 불문하고 기도 중인 분들의 뇌 속에서는 신비한 영적 체험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앤드루 뉴버그(당시 펜실베이니아대학 핵의학과조교수)는 신이 인간의 뇌 속에 있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립니다.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일갈이 1885년, 그에 동조하는 합리주의자들의 주장도 솔깃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죽었다면 살았었다고, 실재는 아니라 하더라도 커다란 존재감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고인돌 위를 비추던 달이 오늘의 새벽하늘에도 떠있습니다. 굿을 할 때 꽂아두는 깃발이며 칼을 따라 신이 내려오는 것이라면 무수한 피뢰침을 타고 오늘의 쓸쓸한 신은 외로운 강림을 되풀이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모신 신당의 신들이 우리 일가친척들을 돌보아주셨을까요. 그렇게까지 소원하셨던 것들을 우리는 다 받은 걸까요. 이 정도가 만신들이 내려주신 최대치의 행복일까요. 덕분에 숱한 길목에서의 위험을 무사히 피한 걸까요. 그 기도는 스타일을 달리 하면서 엄마에게 이어지고, 엄마의 기도는 다시 저에게로 이어질 텐데 모든 기도의 문구는 단 한 가지, 행복 아닐까요. 자신의 행복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이요. 기도하는 마음이야말로 고요하고 내밀한 굿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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