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묻다-bury-埋 : 고인돌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현재 조사된 것만 150여 기가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고려산 북쪽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고요. 한반도의 고인돌은 3만 기가 자리 잡고 있는데요. 대부분 하천 유역이나 평지에 분포하는데 강화도에는 산의 능선을 따라 꽤 높은 곳에까지 고인돌이 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의 강화는 간척된 모습이기 때문에 간척지의 확대와 해안선의 변화를 검토해보면 지금의 해발 10미터 정도가 선사시대의 해안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지금 평지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고인돌 유적들은 축조 당시 바다와 닿아 있었거나 해안과 가깝거나 하천으로 연결되는 곳에 분포했겠지요.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고인돌은 들판 위에 서 있는 지금의 고인돌과 전혀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고인돌의 형태를 복습해볼까요. 남방식은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 고인돌이고요. 북방식은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 고인돌을 말합니다. 어렴풋이 기억나시지요? 강화도의 고인돌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남방식과 북방식이 함께 섞여 있고요. 고인돌의 재질은 흑운모편마암과 화강편마암이 대부분입니다. 고인돌 무덤방에서는 화살촉, 반달돌칼, 팽이형토기편 등이 출토되었고요.
“부근리 고인돌”을 보세요. 고인돌을 지석묘라고도 부르는데요. 부근리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 북방식입니다. 덮개돌의 무게가 53톤, 길이는 7미터. 입구 역할을 했을 앞뒤의 지석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요. 이 정도를 축조하려면 약 1,000여 명의 인원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지요.
단 한 사람을 위한 무덤입니다. 그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냥 여기저기 내버려져 썩어갔다고 하네요. 신석기시대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누워서 발을 뻗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공간에 죽은 사람을 묻고 세월이 가면 그 위에 또 다른 사람을 묻었다고 합니다. 사나 죽으나 함께 살았던 걸까요.
부근리 고인돌 앞에는 선사시대의 장례절차와 고인돌 축조 과정이 재연 사진 및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습니다. 족장이 사망하면 부족 회의를 하고, 고인돌을 선정하고 이동하고 운구식을 하고 장례의 본 절차를 한 후 고인돌의 덮개를 설치했다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친절한 설명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어쩐지 만화영화처럼 보입니다.
“점골 고인돌”은 하점면 고려산 북쪽 능선 끝자락 해발 15미터 지점에 있습니다. 덮개돌의 길이가 4.28미터에 너비가 3.7미터라고 합니다. 주위는 고요했습니다. 이곳 역시 돌방의 입구가 사라졌습니다. 앞뒤로 열린 그 틈이 새로운 차원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들어가면 다른 세상과 연결될 것 같아요.
묵묵히 서 있는 고인돌 앞에 민들레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단단하고 무겁고 거대한 돌덩이와 여리고 가볍고 작은 꽃송이라니. 그들의 시간이 너무 극명하여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겠지요. 각자의 순간과 각자의 영원을 갖고 있겠지요. 그들을 바라보는 제 순간과 영원은 어떤 것일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순간과 영원은요. 그나저나 민들레는 그 옛날에도 지금처럼 피었을까요? 민들레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