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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Apr 04. 2024

잘 다녀왔습니다

저럴 줄 알았지. 작년에도 그랬잖아. 그전 해에도 그랬고. 그러니까 좀 잘라내거나 방향을 틀면 좋았잖아. 혼자 중얼거립니다. 자목련은 북쪽을 향하느라 다 피기도 전에 제 꽃머리를 짓이기고 있습니다. 나무도 그러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가지치기해주시는 분들도 고민을 하셨을 수 있습니다. 자꾸 북쪽 꽃가지를 잘라내면 비대칭으로 이상해질 테니까요. 그렇다고 저 큰 나무를 옮겨 심을 수도 없고요. 잘못 태어난 아이라는 듯이, 잘못 데려온 아이라는 듯이 한쪽은 황홀하고 한쪽은 처참합니다. 아슬한 꽃의 시간이 지나면 좀 나을까요. 아프고 힘든 건 꽃이나 잎이나 가지나 뿌리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저 나무 뿌리는 또 얼마나 고단하겠어요. 중심을 잡으며 방사형으로 뿌리를 내려야 할 텐데 한쪽은 그럴 수 없는 콘크리트일 테니까요.      


전서구, 아시지요. 전쟁 때 비둘기 발목에 편지를 묶어서 보냈다고요. 제 집으로 돌아가는 본성을 이용해서 훈련시킨 후 요긴하게 사용했다는데요. 집이라는 방향, 돌아간다는 감각, 그것 때문에 허공에서 사라진 비둘기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집이라는 곳은 새들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나무들에게도 정말 소중한 장소일 텐데요. 아침에는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저녁에는 잘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지요. 빈집 도어록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면서도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도 느른해지니까요. 옷을 갈아입고 손을 닦고 물을 마시고 다시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집에 왔으니 다 좋은 걸요. 노련한 전서구처럼 발목에 무엇을 달고 있나 내려다봅니다.      


p.s. 찰스 디킨스는 항상 나침반을 갖고 다니면서 북쪽을 향하며 잤다지요. 지구의 전류에 정렬하면 창의성이 올라간다고 믿었답니다. 오늘밤 북쪽을 향해서 누워 볼까요. 지친 얼굴의 자목련과 층층이 나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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