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밝히다-light-燈 : 전등사
삼랑성 안에 전등사가 있습니다. 전등사는 이미 피안 같아요. 어느 한구석 소홀한 곳이 없습니다. 전등사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입니다. 381년 중국의 아도화상이 강화도로 와서 진종사를 창건하며 불교를 전파합니다. 전등사라고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충렬왕의 부인 정화궁주가 원나라 공주에게 빼앗긴 남편의 안녕을 기원하며 옥등을 시주한 1282년부터이고요. 숙종4년(1678년) 조정의 실록을 이곳에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사고를 지키는 사찰이 되었습니다. 왕실의 비호를 받게 되었고요.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온 병인양요(1866) 때 전등사는 전투 요새로 변합니다. 전등사 스님들과 의병과 전국에서 모여든 포수들이 정족산에서 배수의 진을 친 뒤 격렬한 전쟁 끝에 외적을 쫓아내지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왕실 서적이 전등사 경내 정족산성에 보관되어 있으니 더더욱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요. 전등사 동문을 지나면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있습니다. 그 사진은 따로 올릴게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맞서 싸워 철수의 계기를 만들었던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전등사 대웅전을 이야기할 때면 처마 밑의 나녀 이야기가 빠지지 않지요. 불교의 수호신을 형상화한 원숭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도편수와 사랑을 나누었던 주막집 주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 아실 것 같은데 한 번 더 할까요? 전등사 중건을 책임질 도편수가 한양에서 내려옵니다. 자주 다니던 주막집 주모와 사랑을 하게 되지요.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을 주모에게 맡기면서 절을 다 지으면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을 하는데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지붕을 올리려는 순간 주모는 돈과 함께 사라집니다. 슬픔에 잠긴 도편수가 주모를 조각하여 지붕을 들게 했다고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슬픔에 잠기고 분노가 끓어도 그렇지…….)
사람들은 돌멩이만 있으면 소원을 빕니다. 커다란 돌을 주워 탑의 기단을 쌓은 사람들도, 그 위로 조금 작은 돌을 찾아 차례차례 올리는 사람들도 거의 같은 마음일 텐데요. 돌탑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랍니다. 무거워지고 깊어지면서 간혹 허물어지기도 하겠지요.
곳곳에 환한 꽃무더기가 열리고 산 자를 위한 꽃빛 연등과 죽은 자를 위한 흰 연등이 만개하였습니다. 나무 위에 새겨진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봅니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어깨를 부딪쳐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였어요. 왁자하게 소란스러운가 하면 금방 조용해집니다. 어느 계절에 가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너무 좋아서 그냥 거기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어요. 함께 거니는 기분으로 사진을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