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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Apr 29. 2024

그런 엔딩 따위

'그 드라마 결말 알려줄게-싫어. 스포 금지-해피엔딩이야-너 정말-한국드라마 다 해피엔딩이잖아. 그래서 하는 말임'


한 여대생이 버스 기다리며 나누는 통화였어요. 누군가와 어제 나눈 카톡을 친구에게 읽어주네요. 리포트, 결말, 강의실, 실습실 등의 단어로 여대생이라는 걸 알았어요. 아, 어제가 생일이었다는군요. 축하받은 문자도 읽어줬거든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니 바보야, 축하가 감사할 일이 아니고 네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지,라는 답을 들었대요. 그 후는 ㅋㅋㅋㅋ의 주고받음이 이어지는군요. 나도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엔딩, 해피 비슷해요.


제일 좋은 엔딩은 해피한 그 순간, 절정의 그 순간, 문제가 해결되고 역경과 고난을 넘어서고 권선징악의 통쾌함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찰나 끝내주면 정말 끝내주는데 말이죠. 그 후의 일들은 첨언해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말이죠. 오래오래 사랑하다가 한 사람은 먼저 눈을 감고 남은 사람이 그들의 사랑을 추억하며 끝이 나는군요. 햇살이 잘 드는 옛집의 선반이며 벽에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빛나는 순간들의 사진을 느리게 보여주며 진짜 끝이 납니다. 텅 빈 집이겠어요. 모든 소란이 사라지고 그것들을 그리워할 사람들도 사라지고 적요만이 남겠습니다.


이런 엔딩 따위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결말은 이미 알고 있는 걸요. 너무,라는 부사를 가득 사용할 만한 행복만 남겨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게 순도 백 프로의 해피엔딩이니까요. 어제의 드라마는 행복했지만 그냥 엔딩입니다. 아주 현실적인 즉답이고요. 판타지는 드라마 속에도 없었습니다. 말랑말랑 달콤달콤한 결말을 소망하였는지 리얼리티의 통증이 뒤통수를 칩니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거죠. 버스가 병원 장례식장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요양병원, 사거리 직전에 초등학교, 코너를 돌면 복싱클럽, 여기서 저는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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