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Apr 29. 2024

가능한 한 오랫동안

환승하러 가다가 공원으로 샙니다. 등나무 꽃그늘 아래서 힘찬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가사에 귀를 기울이려는데 길게 누운 저 여인은 잠든 건지 쉬는 건지 여행객인지 노숙자인지 모르겠어요. 손에는 음악의 근원지인 휴대폰을 꼭 쥐고 계십니다. 꿀잠이기를 바랍니다. 몇 번이고 돌아봅니다. 손으로 박자를 맞추시는군요. 다행입니다.


La Monte Young의 Composition 1960 # 6은 시(B)와 파# 의 완전 5도로 이루어진 화음을 오랫동안 유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악보가 끝나지 않아요. 열려 있습니다.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얼마나 오래인가, 하는 점이 관건이지요. 종이 한 장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가볍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들고 있는다면 천 금 이상이 되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마리의 나비 혹은 여러 마리의 나비들을 공연 장소에 풀어놓습니다. 작품이 끝나면, 나비가 바깥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 곡은 어떠한 길이도 가능합니다. 만약 제한 없는 시간이 가능할 경우, (공연 장소의) 문과 창문들을 나비를 풀어주기 전에 열어놓아 주세요. 이 경우에 나비가 바깥으로 날아갈 때를 곡의 종료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127627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면 누워서 먹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제한 없는 오랫동안이라면 무겁고 무서운 일입니다. 무엇을 오랫동안 해야 할까요. 어떤 나비를 풀어놓을까요.

The magnetic field 캡처

La Monte Young on MELA Foundation, New York : http://www.melafoundation.org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엔딩 따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