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10

by 김박은경

9. 기록하다-record-記 : 병인양란록

『병인양란록』은 나주 임씨라는 양반 여성이 병인양요 때 직접 겪은 전쟁 체험과 수난을 한글로 기록한 일기입니다. 그녀는 대대로 강화도에 거주하였던 사람으로 1866년, 49세의 나이에 전쟁과 피난을 겪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것들과 보고 들은 이야기를 활용하여 글을 썼습니다. 이 부분의 인용문의 출처는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 (“병인양요에 대한 기억”, 한국고전여성문학회)입니다.


현재 병인양요와 관련하여 전하는 기록들은 대부분 한문으로 쓴 공식 기록인데 비하여 임씨의 책은 한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강화도민의 고통과 수난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고요. 사투리로 쓰여 있어서 한글 고어(古語) 및 강화도 방언 연구에도 유용한 자료라고 합니다. 표지 이면에 연필로 ‘경주 김 씨가 쓴 것이다’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어요. 보이시지요? 하지만 작품 내에 서술된 작가 관련 정보를 추출해본 결과 나주 임씨로 확인되었습니다.

9-1.jpg (병인양란록, 출처는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 중 “병인양요에 대한 기억”)


나주 임씨는 본인이 직접 체험한 것뿐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보고 들은 것들을 두루 참조하여 병인양요 발발 이전에 서구인들이 강화도를 찾아오는 데서부터 저술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강화도에 살던 여홍민 씨 집안의 민치승과 결혼을 합니다. 남편 민치승과의 사이에서 1남 4녀를 두었지만 둘째 딸과 아들 그리고 셋째 딸을 연이어 잃는 슬픔을 겪었다고 해요.


병인양요는 구(舊)질서와 신(新)질서, 조선왕조 체제의 전통과 서구자본주의 근대가 무력으로 충돌하는 사건이었고요. 강화도에 살던 양반가 여성의 시각으로 전쟁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강화도민이 겪어야 했던 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 로즈제독은 7척의 전함과 1,4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와서 강화해협을 장악하여 한강을 봉쇄하였고, 10월 14일 강화도에 상륙했습니다. 11월 21일 2차 원정이 끝날 때까지 2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전쟁에서 강화도민은 당시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각각 살길을 찾아 피란 생활을 떠나야 했습니다.


9-2.jpg (프랑스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 사진출처: 강화군청)
9-3.jpg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사진출처: 『강화도의 기억을 걷다』)
9-4.jpg (강화읍성 프랑스군. 사진출처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고 있던 상황에서 그녀 일행은 낮에는 집의 뒷산에 파놓은 굴에 숨어 지내야 했고요. 밤이 되면 집에 내려오는 생활을 했다고 해요. 음력 9월 11일에 시부모와 일가 사람, 노비 등을 포함 60여 명의 일행과 함께 황해도 평산으로 피란을 갔고요. 프랑스 군대가 물러간 후 다시 강화도로 돌아오게 됩니다. 작가의 증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읍내에서 수만금 부자의 재물을 빼앗고 집에다가 불을 놓고 도망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남동 이 참판의 손자 이철주도 거기에 사는데, 비록 가난하지만 좋은 집에 세간살이가 찬란하였는데 위급한 상황에 다 버리고 부인네들이 총각 모양을 하고 손목을 잡고 도망하였다. 그 집도 불을 놓고 세간은 다 부수었으며, 마을로 떼 지어 다니면서 여인들 욕보이기와 세간 탈취하였는데, 남자의 옷과 쇠붙이와 돈이며 양식이며 소 잡기와 닭은 더 좋아했다.

집을 잠그고 간 집은 다 부수거나 혹 불을 놓았고 주인이 있어 대접하고 닭을 잡아 주는 자는 칭찬하였다. 그리하면 그 집의 물건은 가져가는 것이 없더라. 제각각 살기를 구하여 겁이 나서 떨고 있으니 어느 누가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할 사람이 있겠는가?”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


프랑스 함대의 1차, 2차 원정 당시 도성 안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고 조선 관군의 대응은 무기력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맞서 싸우지도 못한 채 관복을 평복으로 갈아입고서 백성들과 섞이어 도망가기에 바빴다고요. 또한 강화도민들이 서양인들에게 협력하였다고 하여 강화도민을 없애라는 전교의 소문은 불신을 조장하고 공포를 증폭시켰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외세 침탈에 맞서 충절을 드러낸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시원은 1815년 문과에 급제, 벼슬이 홍문관제학에 이르렀으나 1866년 강화도가 함락되자 동생 이지원과 함께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합니다. 또한 양헌수 장군은 정족산성을 지키던 중 프랑스 함대의 로즈제독이 보낸 해군대령 올리비에의 부대 160여 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을 격퇴시킵니다. 사진은 전등사에 있는 양헌수 장군 승전비입니다. 돌탑에 가려 아래 부분이 안 보이네요.

9-5.jpg (양헌수 장군 승전비. 전등사 동문 초입)

한 여인의 일기가, 그것도 한글로 쓰인 일기가 한 시대의 비극적 전쟁의 면모를 리얼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평소에도 하루하루 꾸준히 일기를 쓰는 게 어려운데 전쟁 중이라니요. 위로 아래로 챙기고 모시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여인의 삶에서 이렇게 시간을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은 마음에 이 일기는 더욱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전쟁은 특히 여성들에게 가혹한 비극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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