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11

by 김박은경

10. 찍다-take-撮 : 사진엽서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소총과 대포와 함께 들고 온 무기는 카메라였다고 합니다. 미 군함에 동승했던 이탈리아 사진작가 펠리체 베아토는 한국에 온 최초의 중군기자였다고요. 승리를 축하하며 성조기를 꽂는 미군들의 모습이며 광성보에 즐비한 조선 병사들의 시체를 찍습니다. 그 사진이 서구 신문과 잡지 곳곳에 실리면서 조선은 그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되고요.


19세기 말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를 찾아 총과 카메라를 들고 다녔습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찾아내고 그곳으로 관광을 떠납니다. 그들이 발견한 원주민들의 사진이 관광엽서에 실리지요. 급속도로 확산된 제국주의는 인쇄 자본주의와 결합하며 더욱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인쇄물 시장의 호황으로 제국 문화를 담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런 카드는 영국, 독일,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등의 제국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영업했던 기업들이 발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품 홍보를 위해 제작되었고요.


여기에는 식민지 풍경과 세계 각국의 인종과 풍습과 역사 같은 것들이 소개되고 있는데요. 여러 이미지들 중 특히 인종 이미지는 서구인들에게 훌륭한 볼거리였다고 해요. 이런 카드를 수집하는 것이 당시 교양인들의 취미로 여겨지면서 유행했고요. 원주민은 야만인이고 자신은 문명인이라는 대조적 우월감을 자랑스러워하면서요.


신문이나 잡지, 여행기와 엽서 속에 재현된 사진들은 제국의 국민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고 합니다. 스테레오 뷰 카드(stereo view card)는 저도 박물관에 가면 많이 보던 타입인데요. 똑같은 두 개의 이미지를 좌우 50~70mm 간격으로 동시에 찍어 두 개의 확대 렌즈가 달린 확대경으로 보면 입체감이 있는 상이 보이는 방식입니다.


10-1.jpg (스테레오 뷰 카드. 사진출처: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10-2.jpg (러·일 전쟁 관련 엽서. 사진출처: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위의 사진은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전쟁에서 희생양이 된 조선의 처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조선은 울고 있는 여성으로 재현되어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의 관계가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진들에는 ‘제국주의를 지지해 주는 서구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주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 등 비서구 문화에 대한 타자적 시선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식민지인들의 인종과 풍속에 관한 이미지는 비서구 문화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고요. ‘인류의 역사가 야만(savagery) -> 미개(barbarism) -> 문명(civilization)의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보며 비서구는 야만이나 미개에 해당되는 열등한 존재라고 인식했다는 거죠. (따옴표 부분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민음사)


1900년 무렵 독일에 본사를 둔 리비히(Liebig)라는 식품가공회사에서 발행한 홍보용 카드를 좀 보세요. 제물포항을 배경으로 갓을 쓴 조선인은 사진을 복제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다른 사진들은 사실감이 떨어집니다.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선은 그들의 상상 속에서 재탄생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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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jpg (‘조선인’이 그려진 상품 카드 6장 세트의 일부. 사진출처: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아래 사진의 경우 제목이 ’조선 풍속, 선녀(善女)의 미도(米搗:custom of korean)’입니다. 조선인을 선인(鮮人)으로 지칭하고 한반도 북쪽과 남쪽을 각각 북선(北鮮)과 남선(南鮮)으로, 만주와 조선을 일컬어 만선(滿鮮)이라 했던 일본 중심 이름 짓기에서 나온 명칭입니다. 사진 속 여인은 우연한 개인의 마주침이 아니라 조선 여성의 일반적 이미지로 만들어져요. 조선의 열악한 사회상과 전근대성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진들이 우리들에 대한 구체적 증거라도 되는 듯 제시되고 있고요.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성의 원시성은 그것을 바라보는 제국주의 남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조선인은 개인성을 상실하고 민족의 대표 이미지로 조작되고 있습니다.


10-5.jpg (조선 여인. 출처: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조선인들은 지배자를 위한 상품거리가 되었습니다. 조선인 남성은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물고 있고요. 여성들은 쓰개치마를 쓰고 외출을 합니다. 이러한 한정적 이미지가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객관적 기능을 대체하게 되지요. 1921년 《개벽》에 실린 기사에는 서구인들이 조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각국의 오인들은 조선 사람이라 하면 그저 긴 담배대 들고 상투 짝고 발벗고 사는 일종 야인으로 생각하나니’라고요.


1883년 경 조선을 방문했던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은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틈이 벌어져 가슴이 약간 노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일은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오는 평민 계층에서나 볼 수 있는 우연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확대 재생산한 역할을 사진엽서가 한 것이지요.


이런 것들은 저에게도 이것은 폭력적인 시선입니다. 당시의 자료는 이렇게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촬영된 것밖에 볼 수가 없으니까요. 저 또한 저 또한 저 시대에는 다들 저렇게 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나 보다, 더럽고 구겨진 옷을 입었나 보다, 먹고 살기가 저토록 힘들었구나,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그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보여주고 싶은 대로 찍는 겁니다. 편견과 오해와 왜곡의 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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