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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04. 2024

당신이 릴케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오월엔 작약이고 유월엔 수국이지. 이거 좀 봐. 이 꽃이 수국이야. 피기 시작이야. 매년 말해줘도 매년 새로워하네. 점심 좀 바깥에서 사 먹고 산책 좀 해. 회사 근처 그 산책로 정말 유명하더라. 더워지면 걷고 싶어도 못 걸어. 벚꽃 필 때도 못 갔잖아. 혼자도 좋고 동료들과도 좋고 십 분도 좋고 오 분도 좋고, 정말 좋다니까. 잠깐의 행복을 선물해 줘. 스스로에게 말이야. 백 번 말해도 듣지 않지. 왜 그렇게 삭막하게 살아. 햇살이 얼마나 좋은데, 바람이 얼마나 근사한데. 맨날 모니터만 보고 서류나 보고 업무 통화나 하고 무슨 재미로 살아. 구내식당 메뉴가 좋아야 얼마나 좋겠어. 햄버거나 샌드위치 사서 천변에서 먹어 보라니까. 싫으면 커피도 좋고. 콧바람을 좀 넣어주라고. 해가 좋을 때 그릇들 다 꺼내서 내놓는 거 본 적 있지? 없어? 엄마들이 예전에 그랬잖아. 싱크대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던 그릇들 다 꺼내서 햇살 설거지 하는 거야. 그러면 뭔지 모르게 살아난다니까. 그릇도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어. 그날이 그날이라고 뭐 재밌는 거 없냐고 그러면서 쇼츠 보느라 인생 짧아지는 것도 모르는 채 살지 말자고. 당신이 장미 가시에 찔리는 헤세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예쁘고 좋은 거 좀 보고 다니라니까. 뭐? 아, 장미 가시에 찔린 건 릴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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