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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14. 2024

연민이 무슨 소용인가

길 건너 아파트 상가 입구로 무언가 날아들었다. 크고 검은데, 연초록 긴 물체를 달고 있었다. 장수말벌처럼 생겼는데 애벌레 한 마리를 들고 머뭇거리는데 휴대폰을 여는 사이 애벌레가 사라졌다. 하단에 붙은 계란판 조각 같은 것, 그 중앙의 작은 구멍 속으로 넣어준 모양이다. 벌이 만들어둔 아기방은 세 칸. 어쩌다 이곳까지 와서 집을 지었는지, 이렇게 낮으면 쉽게 눈에 띌 텐데. 이 상가를 청소하는 청년은 빗자루질이 힘차던데. 다 자라서 그 집을 나와 날아오를 때까지 괜찮을까. 스프레이 몇 번이면 전멸일 텐데. 무엇으로 가려주어야 할까. 그리고 그 애벌레, 간신히 태어나 자라다가 잡혀온 죽음. 누구 편을 들어줄 수도 없이 위태로웠다. 작은 생명, 큰 생명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스스로에게는 모두 거대한 단 하나의 생명인데. 안쓰럽지만 인간들의 역경과 고난을 그저 바라보는 일이, 무심한 신이며 무기력한 천사들의 몫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연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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