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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17. 2024

서로 알아보는 사이

특급 저녁을 핀셋으로 주었다. 며칠 이렇게 주었으니 오늘도 같은 방법으로. 그런데 거북 씨, 나를 노려본다. 멍청한 인간, 이제 이런 방식은 필요 없어, 하는 것 같다. 알았어, 알겠다. 거북 씨를 집에 넣어주고 물에 넣어준다. 화가 났는지 처음엔 쳐다도 보지 않다가 아이고 그래, 내가 미안해, 안 볼게, 너 편할 대로 해. 돌아서는 척 몰래 보니 주춤거리다가 점점 맹렬히 먹기 시작한다. 준 걸 다 먹는다. 오옷, 리필 가능합니다, 신나서 더 갖다 주었다. 이렇게 의사표현이 정확하니 말이 무용한 걸까.


다른 종과 함께 사는 사람은 그 존재가 애완의 대명사가 된다. 거북이가 내겐 한 마리 새, 한 마리 개,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 도마뱀 그 이상이다. 말수 적은 고독한 인간 같을 때도 있다.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그렇지 않은 날에도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니, 나는 말하고 거북 씨는 들어준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내리지도 않는다. 잘했다 못했다 그런 말도 안 한다. 고맙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거북 씨 코에 내 코를 갖다 대면 어랏, 피하지도 않는다. 너도 내가 마음에 드니.


누가 먼저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그게 만일 거북 씨라면 나를 마중 나올까. 거북 씨가 얼마나 빠른지 익히 알고 있으니 늦을 걱정은 안 한다. 다만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거북이가 그 거북이 같은 세상, 저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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