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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l 06. 2024

안달루시아의 개와 건축무한육각면체

눈알을 가르는 면도날, 개미들이 득실거리는 손바닥 장면이 떠오릅니다. 달리와 부뉴열이 감독한 작품이요. 평론가이자 시나리오작가인 로저 에버트는 그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안달루시아의 개가 우리가 여러 사진에서 보는 늙수그레한 노인들인 부뉴엘과 달리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세상을 휩쓴 동안 파리에 팽배하던 해방감에 도취된 고집불통의 20대 젊은이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기억하는 편이 더 낫다. 초현실주의자와 섹스 피스톨스 사이에는 , 부뉴엘과 데이비드 린치 사이에는, 달리와 데미언 허스트 사이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있다."고요. 그 영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기, 선입견을 부수기, 상상의 한계를 넘기, 오독 대환영, 각자의 입맛대로 씹기를 바람. 그런 과정이 지난 다음에 돌아보면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하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거나 자유, 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애버트는 또한 부뉴엘의 자서전 속 구절을 인용하는데요.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경멸하는 사회를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된 무기는 물론 총이 아니라 스캔들이었다.” 고요.


한국인 박사과정생이 이상의 난해시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가 4차원 공간을 뜻하는 것이라고 밝혀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230923) 시의 첫 줄에는 '사각의중의사각의중의사각의중의사각 의중의 사각'이 쓰여 있는데요. 기존 해석에서는 '사각의중의사각'이 큰 사각형 안에 있는 작은 사각형 정도로 해석하곤 했으나 3차원 공간으로 확장시킨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요. "한 사각형이 다른 사각형의 중심선을 관통하고, 또 다른 사각형이 관통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4차원까지 확장된다"고요. 이런 해석의 결정적 이유는 투상도법이라는데요. 투상도법은 건축가들이 설계도를 그릴 때 기준면을 잡는 대표적인 면이기 때문이고요. 이상이 건축가인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이상은 해석 이 불가능해지기를 의도했을 수 있습니다. 독자며 평론가들이 해석 그 자체에 가닿지 못하고 오독과 망독 속에서 안간힘 쓰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을 수도요. 이해된다면, 수용하게 된다면 일제치하라는 현실 또한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되는 게 싫었기 때문 아닐까요. 미칠 지경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 미쳐버리는 것일 수도요.


안달루시아의 개나 건축무한육각면체의 의도를 저는 알 수 없지만 사고의 방향과 한계에 대한 어떤 열쇠를 쥐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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