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15

by 김박은경

2) 조경희

조경희는 한국 수필문단의 어머니로 불립니다. 1971년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지내기도 합니다. 그의 문학의 키워드는 자기성찰과 반성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고요.


강화에서 태어나 기자로 살았던 그가 글쓰기를 배운 것은 1934년, 이태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강의하시던 내용이 나중에 단행본 『문장강화』로 나왔고요. 이태준 선생은 첫 강의 시간에 ‘무덤자리’라는 글 제목을 주셨는데 다음 시간에 그녀의 글을 제일 먼저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 일이 그녀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요. 강화역사관 2층에는 조경희 수필문학관이 있습니다.

13-4.jpg ( ‘조경희 수필문학관’. 출처는 국민일보 2017. 02. 17 “삶의 망망대해 떠돌던 조각배 구원을 받다”)

그의 수필집 『조경희 수필집』 중 「역사의 고장, 강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고향 강화는 서울에서 가깝고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처녀지 같은 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강화에 가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꿀 같은 단물을 마실 수 있다. 거기에다 우리의 눈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푸른 나무숲, 꽃동산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강화에 볼거리를 줄 수 있는 역사박물관을 세운다든지 이규보의 집, 선원 김삼용 선생의 생가 재건, 신토불이의 농수산물센터의 확충 등과 병행해서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서 내실을 기하는 설계로 ‘발전하는 강화’라는 구호가 헛되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그의 바람들 중 많은 것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수필을 왜 빼는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 기름기 없는 산뜻한 일품요리가 생각난다. 상허 이태준 선생은 그의 『문장강화』에서 수필 이야기에서 입이 개운한 일품요리의 맛 같다고 서술한 적이 있다.

긴 장편소설을 읽든지 난해한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씨름할 때 산뜻한 수필 한 편을 읽는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기분일 것 같다.(...) 문학전문지에서 마련한 문학상을 주는데도 꼭 수필에는 인색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수필을 쓰는 뜻있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 왜 수필만 빠지느냐는 것이다. (...) 만일 위대한 소설가나 시인이 수필집 한 권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에 후배들이 그들의 소설이나 시를 연구할 때에 작가의 생생한 기록을 접하지 못할 줄 안다.”

수필이라는 분야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다는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수필의 종류랄까, 가닥은 굉장히 풍성해졌고요. 쓰는 사람도 많고 읽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3) 함민복

강화도를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함민복 입니다. 그는 이제 완전히 강화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강화도로 가서 참 좋습니다. 강화도도 그가 가서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잘 모르면서 어쩐지 알 것만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는 아주 무거우면서 아주 가벼운 사람일 것 같습니다. 그의 숨마다 시가 될 것 같고 걸음마다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때는 이곳 사람들의 뭍 생활에도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물이 밀려들어올 때는 고추장을 담그지 않는다. 밀물 때 고추장을 담그면 고추장이 끓어 넘는다고 한다. 또 물때에 맞춰 상여가 늦게 나가기도 하고 빨리 나가기도 한다. 물이 멈춰있거나 밀려들어올 때만 하관식을 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내력을 알고 있는 또래들이 없어 노인회장님께 물어보았더니 어른들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할 뿐이지 더 깊은 뜻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반달이 뜨는 음력 8일, 23일로 물이 가장 적게 천천히 움직임)에 난 송아지는 어미를 잘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알려주었다. 그건 확실하다고 직접 여러 번 겪어보았다고 하면서.”

(함민복,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시공사)


서울역 그 식당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