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16

by 김박은경

14. 되다-royalize-爲 : 용흥궁

강화도에는 철종이 태어난 용흥궁이 있습니다. 철종의 이름은 이원범. 그의 아버지는 대원군. 할아버지는 은언군으로 정조의 이복동생입니다. 정조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철종의 할아버지인 은언군은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왕의 직계혈통이 되는 왕족은 세자를 제외하고는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철종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은언군은 철종의 큰아버지인 상계군이 역모에 휩싸이면서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그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유로 신유박해 때 목숨을 잃습니다. 아버지 전계군과 형 원경도 민진용과 이원덕이 원경을 왕으로 세우려는 역모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습니다. 원범은 14세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까지 모두 잃은 고아가 되지요. 이런 원범에게 다시 왕족으로 사는 일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왕손이라는 자부심 대신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19살 때 왕으로 지명되어 신하들이 모시러 왔을 때 신하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지요. 자신을 죽이러 온 사람들로 오해를 한 겁니다.

왕이 되기 전의 원범은 하루하루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여자 친구 봉이(양순)가 있어 큰 행복을 느꼈다고요. 원범을 좋아했던 봉이와의 사랑은 “찬우물 약수터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을 원범과 봉이에게 찬우물의 약수는 최고의 음료가 되었겠지요. 세도가문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그때 봉이의 사랑이야말로 원범에게는 커다란 축복이었을 것 같습니다.


열아홉 살에 이원범은 조선의 25대 왕 철종이 됩니다. 당시의 정치는 특정한 가문에 의해 중앙정치가 운영되는 세도정치의 시기였습니다. 정조,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기까지 세도정치는 이어지고요. 철종 때는 안동김씨가 권력을 가진 시기였습니다. 철종을 강화도령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아둔하고 학문과 거리가 먼 농부’라는 뜻이라지요.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이 살던 초가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습니다. 임금을 용에 비유해서 용이 일어난 궁이라는 뜻으로 ‘용흥궁’이라 이름 짓고요. ‘잠저(潛邸)’라고 부릅니다. 보통의 경우 왕은 세자 시절 궁궐 내의 동궁에서 살다가 왕으로 즉위하니 잠저가 있다는 것은 왕으로 정해지지 않았던 사람이 왕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14-1.jpg (용흥궁)
14-2.jpg (용흥궁에서 보이는 성공회성당)

용흥궁은 성공회성당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용흥궁 마당 위로 초여름 햇살이 쨍하게 비추었습니다. 이곳을 어린 왕이 거닐었겠구나 생각했지만, 그곳은 철종이 될 소년이 살아본 적 없는 집이었네요. 그래도 그 땅에는 그의 걸음이 닿았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던 시골처녀와 함께 걷기도 했겠지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의 기억이 그의 짧은 생 내내 남아 그리움을 더했을 것 같습니다.


철종의 어진을 뵙고 가세요.


14-3.jpg (철종. 출처는 강화군청)

철종은 실권을 쥐고 있던 안동 김씨 외척의 힘에 밀려 고단하게 살다가 서른셋에 이질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왕위를 계승할 자식이 없어 흥선군의 차남이 왕위를 계승, 고종이 즉위하지요.


철종을 주인공으로 한 최근 드라마 <철인왕후> (2020)가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 영혼이 깃들어 ‘저 세상 텐션’을 갖게 된 중전 김소용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혼 가출 스캔들”이 자체 소개문입니다.


14-4.jpg (<철인왕후> 출처는 tvN)

이 드라마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용흥궁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면 흥미롭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온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니 그 시절 철종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왕이 되었는지, 진정한 왕이 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평행 우주처럼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들이 있다 치면 철인왕후 같은 드라마가 수없이 많은 스토리로 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용흥궁은 아무도 태어난 적이 없는 집입니다. 살았던 적도 물론 없고요. 살림의 편리함 대신 잠저로서의 권위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원래 살림집은 대문을 지나 바깥주인이 거주하는 사랑채를 처음 만나는 게 일반적인데 비해 용흥궁은 솟을대문을 지나 만나는 첫 공간이 여성들의 공간이었던 안채입니다. 사랑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안채보다 높은 자리에 배치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철종은 준비된 왕은 아니었습니다. 지나간 19년의 세월이, 그 시간의 자유로움이, 그 속의 사랑이 그리웠겠지요. 왕이 된 지 3년 후 스스로 정치를 하려는 친정이 선포되지만 세도가문의 힘은 너무 컸습니다. 그래도 강화에서 어렵게 살던 시절의 측은함으로 기근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구제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지만 양반의 반대로 실효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철종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 구조의 모순은 전주민란을 시작으로 농민봉기, 동학 창시 등 자구책을 찾는 방향으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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