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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l 12. 2024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은 '윤영자’라는 여성노인의 생애경로를 들여다본다. 그녀는 평범한 삶을 산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많아서 일상 같다. 흔한 가난이기 때문이다. 윤영자는 결혼, 3남 3녀의 출산, 그들의 대학 진학, 그들의 결혼, 자식들의 퇴직 및 사업 실패와 금전 요구, 남편의 퇴직, 남편의 질병 같은 사건사고를 겪는다. 그 사이 IMF 경제위기, 북아현동 재개발, 2008년 세계경제위기 등의 일이 일어난다. 그녀는 단독주택을 구입할 정도의 부를 축적했지만 이내 자산을 잃고, 지금은 20만 원 남짓 하는 연금과 폐지를 주워 판 돈,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합쳐 50만 원 남짓으로 한 달을 산다.


연금만 받으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믿는 사람들, 그걸 받으면 쥐꼬리 임금의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 그러나 연금으로 생활이 될 리 없고 근로를 나가거나 봉사를 나가거나 폐지를 줍거나 뭐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나마 나쁜 병에 걸리는 일이라도 없어야 할 텐데. 그나마 집 한 칸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일 텐데. 보험도 없이 불안한 걸음걸음, 그러나 모퉁이를 돌면서 기어이 넘어질 수도 있고.


위의 책에서 여성 노인은 병든 남편이나 돌봐야 할 어린 손주가 있을 경우 폐지를 주우며 골목을 돌아다니다가도 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 밥을 차린다.


오늘의 역 휴게의자에는 여자 노인들, 야광조끼를 입고 새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나마 건강한 분들. 늙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는데. 그곳을 막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텐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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