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팔 옷이 많이 보입니다. 에어컨 대비용이겠지요. 전철이 제일 시원하니까요. 길고 긴 여름인데 다음 주면 서서히 고개를 숙이려나요. 덥다 덥다가 춥다 춥다로 순식간에 변환되는 거 신기합니다. 봄과 가을이 좋지만 요즘은 여름과 겨울도 좋습니다. 사철이 한 철이라면 옷장 정리는 수월할 텐데, 그러면 시간의 격동성을 더 쉽게 잊을 것도 같습니다. 80세까지 산다면 320개의 계절, 초반 10년은 철도 모르고 살 테니 70년으로 치면 280개의 계절. 남은 계절은 몇 개일까요.
사월이 좋아 사월은 거짓말로 시작되고 사월은 후드티를 겉옷으로 입을 수 있는 날씨 사월이라서 그런가 의자 가지고 이리 와 그런 소리가 들렸는데 의자만 놓여 있다
사월이라서 그래 사월의 나는 농담 같고 사월의 거리에는 사람 아닌 것이 많다 사월은 농담의 제철 농담은 웃지 못하는 사람을 만들고 내가 재미없어져도 사월이라서
그럴 수 있지 사월의 거리에 앉는다 머리까지 덮은 후드는 사월의 속옷이 되고 사월은 겉옷 하나론 부족한 날씨 나 하나로 부족해 내가 앉은 의자는 사월의 빈 의자가 되고
나는 사월의 사과나무 한그루다 사월은 아직 사과가 열리지 않는 계절 사월에 사과는 시작되지 않는다 사과의 제철은 언제일까 사과나무조차 사실 알 수 없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월이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먹지 않아도 사과를 만든다 사월이 좋아 사월은 거짓말로 시작돼서 사과 없이 끝나고 사월의 사과나무는 사과의 맛을 모르고
나로부터 사과 한알이 떨어진다 덜 익은 껍질을 속옷처럼 입고 거리와 부딪친다 사월이 주워 담지 못한 한마디 끝없이 구른다 사월이 끝나도 나는 끝나지 않듯이
-한재범, 사월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