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자유와 해방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도 같았죠. 나도 남도 놀라운 식별의 순간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잘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조금 더 센 것을, 아니 조금 더 독창적인 것을 했습니다. 점에서 선으로 이동합니다. 점과 선이 만들 수 있는 최상의 하모니는 글자가 아닌가, 무슨 레터링을 해볼까 고심에 들어갑니다. memento mori도 seize the day도 amore fati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흔하고 당연하니까요. 그러다가 드디어 찾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문장을요. 그 문장 속 단어의 앞 자만 취하고, 글자체는 고전적인 흑자체로 구상했습니다. 세상에, 너무 예쁘고 멋있고 아름답고 특별한 겁니다. 전문가로 보이는 타투이스트를 고르고 예약을 합니다. 그런데…
생각이란 것을 또 해봅니다. 제가 찾은 궁극의 문장이라면 그 문장의 삶을 산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라야 맞습니다. 피부에 또 무엇을 새기고 잊지 말자, 나여, 하는 일이 어쩐지 코미디 같더군요. 그 문장은 이미 새겨둔 타투들 사이의 빈자리마다, 아니 저의 전 존재적 피부의 위아래 가득히 새겨진 것과 진배없더란 거죠. 숨을 쉴 때마다,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미 복기하고 있으니 제 세포의 피막에도 새겨지고 있을 겁니다. 하여 예약은 취소하였습니다. 그 소회가 개운하고 당당합니다.
p.s. 사진의 글자체는 흑자체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흑자체(blackletter)는 서부 유럽에서 12세기~16세기에 걸쳐 주로 사용되던 글꼴이다. 독일어에서의 경우는 20세기까지도 사용되었다. 프락투어(Fraktur)는 가장 널리 쓰이던 흑자체의 종류이며, 다른 종류들도 똑같이 프락투어'로 불리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