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샀습니다. 몇 달을 고민했어요. 집에 의자 많은데 굳이 사야 하나 싶어서요. 그 가격의 다른 것은 쉽게 사며 의자는 망설이게 되더군요. 부피도 크고 사는 일도 버리는 일도 품과 돈과 시간이 드니까요.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보고 또 보다가 화요일 아침 구매버튼을 누릅니다. 수요일에 배송이 되었습니다. 고민이 무색하게 맘에 꼭 들어요. 그런데 닦다 보니 의자 밑의 나사가 3개 없네요. 그래도 흔들림은 없는데, 바로 쓰고 싶은 마음과 싸웁니다. 결론은 교환, 다시 받은 의자는 빠진 나사 없고, 빠진 자릴 채우느라 그런 건지 손가락 지문이 다섯 개, 지워지질 않습니다만 그냥 앉기로 합니다.
새 의자에서 일하고 싶어, 새 의자 없이 일하기 싫어 며칠 책만 읽습니다. 원래 의자가 없었던 것처럼요. 덕분에 책의 산더미. 일기조차 짧게 (엎드려서) 썼더니 생의 의욕이 가라앉습니다. 쓰지 않으면 기운이 빠지는군요.
금정연의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에서 브라이언 딜런의 책 <에세이즘>을 인용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기를 쓰고 목록과 단상, 잠언을 작성한다고 해서 고통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이 이제 작가로서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시기가 왔을 때 일기 쓰기는 내가 아직은 어떠한 종류의 작가구나 하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수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손택도 아주 이른 시기부타 자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1979년에도 손택은 여전히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전부 빠짐없이 쓸 것. 늘 노트를 소지할 것.”'
덜 쓸 때, 못 쓸 때면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게 쓰던 자의 집착이고 착각인가 봅니다. 금정연 작가의 책 부제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은 눈물겹습니다. 변주도 가능하겠습니다. 세상이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이 나를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이 내게 관심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이 나를 …
의자는 또 책상매트를 불러옵니다. 서로 낯을 가리는 모양새라서요. 통일 감각을 위해 그걸 또 주문하네요. 다음 주 화요일쯤이면 도착입니다. 공들인 의자와 책상에서, 근사한 작업 환경 속에서 매일 쓰려고요. 세상은 시큰둥할지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