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밤, 친구들과 저녁 식사 도중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한 세미 바스는 조로증을 앓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았답니다. 28세라니요. 그의 28년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슬프지만, 이미 10세 때 부모의 도움으로 이탈리아에 조로증 협회를 설립한 뒤 유전 공학을 통해 조로증을 치료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그 공을 인정받아서 2019년에는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고요. 28년의 하루하루, 10,220일을 얼마나 촘촘히 살아낸 걸까요.
91세의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내 가계에서 내가 제일 오래 살았다. 건강에 각별히 애를 쓰지도 않았는데 이런 걸 보면 막내 너도 90 넘어서까지 살 거야. 그 생각을 하며 계획을 세우렴." 그리고 이어진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엉뚱해서 말이다. 우리 막내가 엉뚱해서…" 걱정이 되시나 봅니다. 힘든 건 없는지 아프진 않은지 변치 않는 걱정은 저의 이십 대 때도 하셨을 텐데요.
전체적으로는 조급하게 굴면서 부분적으로는 태만하게 구는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남은 시간을 눈에 보이도록 적어두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계획표를 세울까 봐요. 일 년이 아니라 생존일을 기준으로요. 얼마나 더 엉뚱해질 수 있는지 시험을 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조로병은 벤자민 버튼병이라고도 합니다. 그 버튼이 눌리면 시간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겠지요. 감각수용기를 바짝 세운 채 흐린 날의 고요에도 깊이 빠져들 수 있겠습니다. 세미 바스 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