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선한 사람 당신은
하얀 사각 종이를 사랑해서
앉아 있는 것이다
쓰려는 사람처럼”
유희경의 시 「선한 사람 당신(부분)」을 이렇게 읽고 싶다.
그러니까
가여운 사람 당신은
하얀 사각 종이를 사랑해서
앉아 있는 것이다. 마치
쓸 수 있다는 듯이
열심히 쓰다가 멈춘다. 이 정도 썼으니, 급한 불은 껐으니, 최선을 다했으니, 잠시 쉬자고. 노트북을 덮고 무선 자판은 끄고 샤프와 볼펜은 펜꽂이에 꽂는다. 그리고 밀어둔 정리와 달콤한 쇼핑을 한다. 세탁실 정리 선반 주문, 망가진 선반 버리기. 안 입는 옷과 신발과 가방 정리, 겨울 신발 구매, 마음에 걸리던 낡은 욕조 교체, 욕실 선반 정리. 맘에 두었던 주방 도구 구매, 낡은 것은 버리기. 그러다 지칠 때면 밀어둔 책들을 읽는다. 그 사이 글감 몇 개가 스쳐간다. 이런 건 에세이로, 이런 건 시로 쓰면 좋겠다고 메모를 하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름 정도 지나는데 뭔지 모를 감정이 스멀스멀. 집안은 잘 정돈되었는데 왜 불편하고 불안한가. 정리된 것은 다시 어질러질 테고, 새로 산 것은 다시 낡아가겠지.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살고 있다는 실감, 살아 있다는 실감이 사라졌다. 그림자가 있나 돌아볼 정도로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 나 뭘 하려고 태어났나.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졸며 깨며 가라앉는다. 읽기는 하지만 쓰지 않고, 쓰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니 멈추지 않는 삶. 아웃풋 없이 인풋만 하다 보니 체증이 도진다.
아 몰라, 하면서 휴대폰을 열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다. 불편도 불안도 잠시 사라지게 하는 귀여운 아기들과 강아지들. 새로운 요리법과 세제들을 보다 보면 이것도 보라고 이것은 어떠냐며 귀신처럼 매달린다. 껌처럼 달라붙는다.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알고리즘의 도미노. 충격적인 헤드카피들은 나를 낚으려는 속셈이란 걸 알면서도 기꺼이 낚이다 보면 하루가 다 가는데 이런 식으로 인생을 허비할 순 없다고 휴대폰을 소파 위로 던져버린다. 물을 마신다. 손톱을 깎는다. 손을 닦는다. 핸드로션을 바른다. 마른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는다.
아무거나 쓰자. 어떻게든 책상에 앉자. 또 잊어버렸지. 글쓰기는 놀이다. 글쓰기는 유희다. 글쓰기는 과제다 글쓰기는 명약이다. 글쓰기는 이해다. 글쓰기는 용서다. 글쓰기는 구원이다. 다시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너무 멀리 가면 안 된다. 문을 닫거나 잠가버리면 안 된다. 인풋을 쌓아두면 아웃풋이 될 거라는 기대는 오해다. 인풋과 아웃풋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미루면 두 방향은 서로 무심해진다. 그러면 못 들어온다. 인풋을 많이 하면 저절로 아웃풋이 될 거라는 기대는 오산이다. 인풋이 너무 쌓이면 출구가 안 보인다. 인풋을 선별하는 심판인 날카로움이 사라진다. 인풋과 아웃풋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그간 소원했다고 쓴다. 소원이 아니라 소홀이 맞겠다고 쓴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쓴다. 책상을 어지럽힌다고 쓴다. 그렇게 쓰기 시작할 때 투명한 컵 바닥에 가라앉은 꿀처럼 느릿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멀리서 내려오는 줄처럼 보이고 그 끝을 잡으면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 같다. 그렇지, 글은 구원이지. 쓰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다. 글을 믿고, 글을 쓰는 마음을 믿고, 그 마음을 가진 스스로를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