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소재와 주제

by 김박은경

허먼 멜빌은 “대단한 책을 쓰려면 대단한 주제를 골라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시도했지만 벼룩을 소재로 해서는 훌륭하고 오래 읽히는 글을 쓸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니 많다. 대단한 책이란 무엇인가. 큰 감동을 주는 책, 교훈을 주는 책, 잊을 수 없는 책,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 베스트셀러, 큰 상을 받는 책, 시간을 뛰어넘어 오래오래 사랑받는 책이겠지.


대단한 주제는 무엇인가. 동어반복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큰 감동을 주는 주제, 교훈을 주는 주제, 잊을 수 없는 주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 시간을 뛰어넘어 오래오래 기억나는 것이겠지. 삶을 뒤흔들고, 인식의 틀을 깨게 하고, 벗어나고 시도하게 해주는 강렬함이 있겠지. 크고 세다는 뜻만은 아니다. 깊고 질긴 주제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벼룩이라는 소재는 어떤가. 훌륭하고 오래 읽히는 글을 쓸 수 없는가. 그렇다면 <개미>는 어떤가, <변신> 속 벌레는 어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는 어떤가. 물론 각각의 은유는 다른 의미겠지만.


멜빌의 의도와는 다르게 번역되었을 수도 있고, 앞뒤가 잘린 말이기 때문에 이런 비난을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소재는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 먼지도 발톱도 눈썹도 개미 오줌도 소재가 될 수 있다.


신선한 재료가 있어야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맞지만, 정말 훌륭한 요리사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다. 국물이 강물처럼 흥건한 오징어볶음에 삼겹살을 투하해서 오삼불고기를 만들던 요리사처럼, 시들어버린 바나나로 바나나케이크를 만들던 친구처럼. 그야말로 소재는 글쓰기의 방아쇠일 뿐이다. 아니 이 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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