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휴일, 아무도 외출하지 않는다. 평일은 서로 바쁘고 주말도 다르지 않던 터라 4인분의 식사준비를 서두른다. 들기름 반 컵, 쌀뜨물 한 컵으로 김치찜을 한다. 고기를 굽는다. 계란 다섯 알에 물 붓고 소금 파 넣고 계란찜은 6분. 상추도 명이나물장아찌도 꺼내고 진미채볶음도 꺼내고, 브로콜리 데쳐서 한 상 차린다. 서로 권하고 당겨주는 식사다. 밀린 이야기가 많다.
조금 쉬고 그와 산책 겸 슈퍼에 간다. 계란 두 판을 사고 초콜릿과 과자도 산다. 건널목을 건나고 길을 가는 그의 걸음은 너무 빠르고, 나란히 걸을 때조차 장바구니를 내 쪽으로 들어서 부딪힌다. 저녁 뭘 먹어도 상관없어. 조금만 먹을 거야. 그의 말에 슬그머니 화가 난다. 나는 그를 중심에 놓는데 그는 이런 식이다. 그것도 좋지, 그것도 좋겠다, 맛있겠어, 하고 답해주면 좋을 텐데. 걸음을 맞춰주면 좋을 텐데. 장바구니는 저쪽 손으로 들어주지. 참지 못 하고 따진다. 그러면서도 따질 일이 뭔지 모르겠다. 모르면서도 화가 난다는 말을 쏟아낸다. 뭐든 상관없다니 아예 먹지 마, 하고 금방 후회한다. 그는 나 변하라고 하는 소리다. 그는 그 손으로 장바구니를 드는 게 편한 거고. 불편하다면 내가 바꿔 서면 될 일. 짐 들어주는 게 어딘가.
저녁은 토르티야 야채쌈이다. 야채 총동원, 닭가슴살이랑 햄이랑 맛살 같은 것들. 수제 소스 바르고 토르티야에 야채 싸서 크게 한 입. 물과 콜라로 건배도 하고 밀린 얘기를 더한다. 아이들이 대답하는 방식, 기분이 좋을 때, 나쁠 때, 대답하기 싫을 때 모두 다르구나. 나도 그렇겠지. 가득 찬 식탁, 그 뒤로 열린 환한 거실, 웃고 이야기하고 누군가 설거지를 하고 누군가 정리를 하고 누군가 식탁을 닦는다.
우리 지금 아주 많이 행복하구나. 지금이 언젠가 몹시 그리울 순간이라는 생각, 벌써 그리워지는 마음. 그렇게까지 그리워질 일 없게 이 일상이 영원이면 좋겠다. 그래서 다 감사하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말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