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불행 경연장 같습니다. 아프고 슬프고 힘든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읽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쁜가 하면 그럴 리가요. 주목받지 못하는 열패감의 자리에 쓰기의 기적을 올려놓습니다.
견디기 힘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견딜만한 일이 되니까요. 누군가 아프니, 괜찮니, 말해주면 조금 덜 아프고 괜찮아지는 기분이 드니까요. 물론 문제를 해결해 줄 리 없고, 위로가 밥 먹여주지도 않지만 누군가 귀를 기울여 듣고 있을 때면, 받아들여지는 느낌입니다. 이해받는 기분입니다. 스스로 말하면서 독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말하는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고 제일 먼저 들어주면서 스스로가 객관화되는 것도 같고요. 주어진 상황을 이성적으로 인식하면서 점과 점을 이을 수도 있을 거라 기대도 하면서요.
그래서 우리는 읽습니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누르지 않거나 읽습니다. 읽기는 이해해, 괜찮아, 좋아질 거야, 힘내, 잘하고 있어, 하는 말의 대신입니다. 그래, 그래 그랬구나, 하는 말의 대신입니다. 가까이 있는 대나무숲처럼 저마다 힘껏 외치고 가벼워져서 나가게 됩니다. 설마 가벼워지겠어, 의심하지만 정말로 가벼워집니다.
용감하게 발설하는 사람과 차마 발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하고 쓰는 사람들보다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숨은 불행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도 괜찮아야지, 괜찮아지자, 하며 다시 일어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