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나의 선언은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다,였다. 그 말은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뜻이고,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라는 뜻이고, 그만큼 나는 자유롭다는 뜻이었다. 뭘 해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데 그 결과가 오롯이 내 몫이라는 뜻이었다.
올해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할까 한다. 모든 것이 그의 손바닥 위의 일이라고. 그가 손을 펴면 나는 편안하고 그가 손을 쥐면 나는 답답하고 그가 손을 기울이면 나는 위태롭고 그가 손을 털면 나는 추락한다고. 하지만 그는 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거라고 믿어 볼까 한다. 그에게 기도할 수도 있고, 그를 조를 수도 있고, 그를 탓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까 한다. 어깨에 무겁던 것이 사라지고 걸음은 가벼워지는 느낌.
뭘 하든 뒷배가 있다고, 무슨 일이 생기든 해결될 거라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도 무섭지 않을 거라고. 백척간두에 선다 해도 떨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혹시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처럼 위험해질까. 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위험해질까. 수습할 수 없는 요란법석의 미아가 될까. 길을 잃고 헤매게 될까.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달려도 그다지 시원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역량 부족이겠지, 노력 부족이겠지, 하여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어 지는데 만약 이 모든 걸음이 혹시 과정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지만 정확히 가고 있는 거라면, 그가 늘 함께 하고 있다면 덜 불안할 것 같기 때문이다.
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어떤 조각인지 몰라서 허둥댈 때, 그게 조각이 맞는지 조차 알 수 없어서 막막할 때, 힘들어서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뭐 하나 번듯하게 해 놓은 것이 없어서 무참해질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소식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할 때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어쩌지.
이 조각은 바로 여기 들어가면 된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다, 네가 해야 하는 일은 이거다, 네가 맞이할 대단원은 이런 것이다, 명징하게 보여줄 거라 단단하게 믿을 수 있다면. 모든 일들이 이해되면서 받아들이게 되면 얼마나 즐거울까. 설마 김 빠진 환타처럼 맛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맛없어질까 봐 눈 감은 채 더듬는 이 꼴을 보고 계시는 건 아니시지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볼까 해요. 모든 것이 당신의 손바닥 위의 일이라고. 내가 당신으로 인해 비롯되었다면 나는 당신을 닮았을 거라고, 당신과 내가 같은 형질로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당신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고 나의 기쁨이 당신의 기쁨이라고. 어쩌면 당신의 손바닥이 나의 손바닥일 수도 있다고.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을 오르내리며 주어진 한 조각을 정성껏 완성하는 중이라고. 나라는 조각이 없으면 당신도 완성될 수 없다고. 그만큼 모든 순간을 소중히 살아 보자고. 그래야 내 손바닥 위의 당신도 편안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