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른 이름

by 김박은경

데이팅앱으로 만나 원나이트를 하는 60대 커플, 치매 걸린 남편과 그를 간병하는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인줄 알았지만 4부작 드라마인 <실버벨이 울릴 때>입니다. 실버벨이니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엔딩이고, 실버의 이야기이기에 실버, 벨입니다.


아니, 그냥 사랑이야기입니다.


앱으로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신뢰하나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아나요.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면 안목이라는 게 생길까요. 너를 사랑하는 것과 너를 믿는다는 것, 너를 믿는다는 것과 너를 안다는 것은 서로 상관이 있을까요. 사랑하지만 믿을 수 없을 때, 믿지만 도통 모른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사랑은 불안을 배태합니다. 사랑하고 믿을 수 있고 모든 걸 알 것 같을 때 그 사랑은 나태해질 수 있습니다. 나태한 사랑 또한 불안을 품고 있지요. 사랑의 다른 말이 불안일까요?


감독은 앱으로 만나 원나이트를 하고 커플이 되는 전형적 해피엔딩에 뻔한 면죄부를 설치합니다. 앱으로 만나기 전에 이미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고요.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둘 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요. 감독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물의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그나저나 우연은 운명 코스의 애피타이저일까요. 그렇게 믿고 싶을 때만 유효한 거 아닐까요. 모든 관계에 우연적 요소가 없을 수 없고, 우연을 운명의 끄트머리 한 갈래일 수 있다고 본다면 옷깃만 스쳐도 마냥 타인은 아닌 걸까요. 너무 많은 우연, 너무 많은 타인들 중 돌올한 한 인연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치면 어쩌지요?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째서 인간을 뒤흔들고 흔들리지 않게 하고, 변하게 하고 변하지 않게 하고, 강하게 하고 약하게 하나요. 정반대의 칼춤이 동일인의 내부에서 일어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난자된 내부가 꽃잎의 그것처럼 황홀할 수 있을까요? 어지러운 그 마음이 종족보존을 위한 유전자의 획책이고 호르몬 장난일 뿐이라고 한다면 속이 울렁거리는데요.


치매 남편은 하루 한 번 젊은 시절로 돌아갑니다. 말도 하고 빠르게 걷고 스스로 밥을 먹으면서 늙은 아내를 하숙집 아줌마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누군가와 닮았다고,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말합니다. 아내가 평생 두려워하던 사람 형상의 얼룩을 지워주려 애쓰고, 찌그러진 플라스틱 통에 그려진 사람 형상을 던지고 치워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젊은 시절 아내의 공포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거죠.


그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주인공은 웃다가 웁니다. 퍽퍽한 웃음에서 솟구치는 울음으로 전이되는 순간이 압권입니다. "내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게 사랑 때문이었구나 알게 되니까 좋은가 봐." 말하는데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현실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명료히 알기 힘들 텐데요. 판타지는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그러니 사랑의 다른 이름은 불안이고 믿음이고 결심이고 슬픔이고 기쁨이고 가능한 수많은 단어들의 대신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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