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잇다-connect-連 : 교동도
교동도는 2104년 7월 개통되었습니다. 배를 타야 갈 수 있었던 곳을 차를 타고 편히 다녀올 수 있게 되었어요.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볼 수 있고,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랍니다.
교동은 전쟁의 섬이었습니다. 지금도 해병대 병사들의 검문을 거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합니다. 나올 때는 반납해야 하고요. 고구려와 백제가 공방을 벌였던 관미성이라는 주장도 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탈로 피해를 입었고, 조선시대에는 강화를 방어하는 수군 사령부로서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된 곳입니다.
또한 교동은 교류의 통로였습니다. 교동 앞 물길을 통해 아라비아 상인은 개성을 드나들었다고 해요. 전국 각지의 세금 또한 교동 앞 물길을 통해 개성이며 한양으로 옮겨졌고요. 그들이 보았을 산과 강과 바다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요.
조강을 아세요? 예성강은요? 저는 몰랐습니다. 강화 북부와 교동을 흐르는 조강이 있고, 황해도 내륙을 관통해 교동 앞바다에 다다르는 예성강이 있습니다. 물은 흐르고 있지만 사람은 흐를 수 없으니 이어진 것도 아니고 끊긴 것도 아닙니다만.
『교동도』의 서문에서 김락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쟁과 교류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물길로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교동을 전쟁이란 측면에서 주목한다는 말은 다의적이고 다층적이다. 전쟁의 끝은 평화이고, 평화는 전쟁이 배태한 갈등의 결과로서 사람들이 품고 바라는 최상의 결과이다.” (김락기 외, 『교동도』, 글누림)
교동도 화개사에 갔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입구 좌측에는 만개한 모란이 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핀 꽃도 아름다웠는데 쓰러진 꽃도 아름다웠어요. 꽃을 지나 화개사 승탑에는 이 절의 창건 유래가 적혀 있습니다. 화개사의 창건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 문신 목은 이색이 독서하던 곳이라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고요.
목은 이색이 14살 때 친구 두 명과 여기서 책을 읽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가 ‘교동’을 제목으로 읊은 칠언절구에도 교동도 정경이 묘사되어 있네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다 문 끝없고 푸른 하늘 나직한데
돛 그림자 나는 듯하고 해는 서로 넘어가네
산 아래 집집마다 흰 술 걸러내어
파 뜯고 회 치는데 닭은 회에 오르려하네
교동도를 매우 좋아하여 자주 찾았다는 이색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오래 전 그의 어린 마음으로 잠시 앉아 쉬었습니다. 나비와 벌들이 무너진 꽃무더기 위를 분주히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법당 안의 금빛 부처는 바깥이 궁금한지 몸을 앞으로 조심히 수그리고 계셨습니다.